사순 제4주간 수요일(2021.03.17) 위로
어제 오후 시간이 나서 수도원에서 4Km 정도 떨어져 있는 ‘삼청 공소’에 걸어서 다녀왔습니다. 걷기에 참 좋았습니다. 맑은 햇살이 참 좋은 날이었습니다. 삼청공소는 나환우 정착촌에 있습니다. 우리 선배 신부님들이 세운 마을이지요. 참 오랜만에 가봤습니다.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닭똥 냄새가 찐하게 코에 들어왔습니다. 양계 사업으로 생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새 집들이 많이 있었지만 거의 그대로였습니다. 오래 전 나도 몇 차례 나환자를 위해서 이 성당에서 미사를 했습니다.
성당 앞에서 한 할머니가 묻습니다. “어데서 오셨습니까?” 나는 “수도원에서 왔습니다”고 대답했지요. 낯선 사람이 들어왔으니 묻는 게 당연합니다. 그 할머니는 성당에 들어가서 조용히 기도합니다.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지 모르지만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작은 기도의 마음이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 듯이 거룩합니다. 나환우 할머니의 기도가 나를 위로합니다.
“죽은 이들이 하느님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그렇게 들은 이들이 살아날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요한 5,25). 오늘 복음 말씀에서 주님은 지금 이 순간이 생명의 말씀을 들을 때라는 것을 일깨워 주십니다. 죽은 이들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가 두 손을 모을 때 생명이 우리 안에서 싹틉니다. 나환우 할머니가 이그러진 손을 모은 것처럼 우리도 짬을 내서 기도할 때 생명을 맞이합니다.
생명의 주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이사 4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