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셋이지만 하나이시고 하나이지만 셋이신 하느님을 믿습니다. 얼굴이 셋이 있는 다신으로 하느님이 아닙니다. 셋 안에 하나이고 하나 안에 셋인 분으로 하느님입니다. 그 어떤 것으로 설명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신비’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굳이 설명하자면 단 하나의 단어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랑’이라는 말로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뿐입니다. 아버지이신 하느님은 아드님이신 하느님을 사랑으로 향하시고 아드님이신 하느님은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사랑으로 향하십니다. 이 두 분 사이의 사랑이 성령이신 하느님이십니다. 사랑 안에서 세 분은 하나로 존재하십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부르는 이름 가운데 ‘사랑’이 가장 탁월합니다.
우리 삶의 안과 밖은 모두 근원을 향해 나아갑니다. 세례는 근원 가운데 근원이신 분을 향해 우리가 나아가는 출발점입니다. 근원을 향해 걸어갈 때 우리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원리를 삶 안에서 실제로 발견하고 살 수 있습니다. 흩어짐에서 모아짐으로, 분열에서 일치로, 혼돈에서 질서로 나아갑니다. 복음선포는 근원을 잃어버려 흩어지고 분열되고 혼란한 사람들을 바른 길로 초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함께!!!’라는 의미를 깊이 생각합니다.
저의 놀라운 체험을 나누었으면 합니다. 5년 동안 스페인 선교사로 라바날 수도원에 살았습니다. 라바날 델 까미노 수도원에는 세 수도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스페인인, 독일인, 한국인 사제 셋이 살았습니다. 함께 기도하고 함께 일합니다. 베네딕도 성인의 가르침에 따라 하느님 안에서 서로를 위해 살아갑니다. 서로 얼굴도 모르던 사람들이 ‘신앙’이라는 정신 아래 모여 산다는 것은 신비입니다.
스페인인 사제인 하비에르 신부는 책임자로서 음식을 만들고 성당에서 노래를 주도하고 순례자들을 만납니다. 독일인 노인 신부님은 밭을 일구고 오후에 성물방을 보고 집안 청소와 빨래를 하고 제의실에서 일합니다. 저는 순례자 숙소에서 정리와 청소를 하고 오전에 성물방을 보고 성당에서 노래하고 순례자들을 만납니다. 특히 저녁기도 전후에 순례자들을 위해 면담과 고해성사 봉사를 돌아가면서 합니다. 필요한 것이 있을 때 알아서 먼저 합니다. 마음이 통하는 것이지요. 스페인어, 영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프랑스어, 한국어로 순례자들과 만납니다.
산티아고 순례자들은 나라가 서로 다른 우리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이 ‘기도하고 일하는 삶’을 보고 모두 놀랍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이해할 수도 없는 하느님의 신비, 곧 삼위일체 신비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세 수도자가 한 마음으로 한 몸으로 매일매일을 구체적으로 사는 것, 이것이 삼위일체 신비를 사는 것입니다.
하느님 아버지, 아드님, 성령이 한 하느님으로 사시는 신비로 우리 모두는 초대받았습니다. 오늘 내 자신이 구체적인 너, 내 옆에 있는 너를 위해 살 때 하느님의 신비를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핵심은 우리 가운데 하느님이 계심을, 하느님의 상생의 신비가 현존함을 믿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을 바탕으로 살 때 우리는 삼위일체 신비를 구체적으로 살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불가능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원천이십니다. ‘함께’는 하느님 안에서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