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야고보 성년의 개막 (2021년~2022년)
순례자 여러분,
2020년 12월 31일 목요일 오후 5시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큰 행사가 있었습니다. 성년의 문 개막식입니다. 산티아고 대교구 교구장 후리안 바리오(Julián Barrio) 대주교가 은망치로 성년의 문을 세 번 두드리며 성년의 문이 열렸습니다. 성년의 문을 통해 대성당에 입장한 후 성 야고보 무덤 위 제대에서 성년 개막 미사를 거행했습니다. 미사 끝에 ‘보타푸메이로’(Botafumeiro)라고 부르는 ‘거대한 향로’가 좌우로 날으며 기도와 기쁨의 향을 대성당에 퍼뜨렸습니다.
7월 25일 성 야고보 축일이 주일에 오는 해에 ‘성 야고보 성년’를 지냅니다. 이번 성년은 2022년까지 2년 동안 지속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교황의 허락을 받아 사목적 이유로 한 해를 더 경축하게 되었습니다.
동영상을 통해 보니 이 예식에는 소수의 사람만이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전염병의 여파로 모두 마스크를 한 채 비가 내리는 가운데 차분히 예식을 진행했습니다. 11년 전 성년 개막 예식 때인 2009년 12월 31일에는 많은 사람들이 기쁨 가운데 이 예식에 참석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예식도 축소된 채 너무나 차분해서 분위기가 무척 슬퍼 보였습니다.
원래는 수 많은 순례자들이 사도의 무덤에 방문해야 합니다.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특히 감염의 위험 때문에 전통적으로 순례자들이 제대 뒤에 있는 사도 야고보 청동상 어깨에 포옹을 하면서 기도하는 행위도 못합니다. 또 대성당 미사에는 정해진 숫자의 사람만이 참석할 수 있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더욱이 한국에서 산티아고 순례를 언제 갈 수 있을지 불분명합니다. 올 한해도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성년의 문’이 모든 이에게 열렸습니다. 영적으로 순례를 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 늘 떠날 수 있습니다. 나의 불안감에서, 나의 집착에서, 나의 아집에서, 나의 소유욕에서 떠날 수 있습니다. 사실 순례는 늘 ‘떠남’입니다. 떠남은 우리에게 긴장과 두려움을 줍니다. 그래서 주저합니다. 하지만 떠남은 그냥 무의미하게 떠나는 것이 아니라 그 무엇을 향해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 무엇은 우리가 각자에게 다릅니다. 선물로 주어질 것입니다.
산티아고의 대주교는 강론 중에 성년은 고통받고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치유와 만남의 때”이며 “은총과 축복의 해”가 되리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처럼 우리 각자도 성 야고보 사도의 무덤에 영적으로 걸어갑시다. 바이러스 덕분에 2년이라는 넉넉한 시간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산티아고 사도가 우리 순례에 도반으로 함께 할 것입니다.
“부엔 까미노”를 외쳐봅니다.
2021년 01월 02일
왜관 수도원에서 인영균 끌레멘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