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2009년에 촬영한 KBS영상이 올라왔네요. 겸재정선 화첩이 왜관 수도원에 귀환한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독일 수도원에서 발견된 겸재 정선의 그림
1975년 독일 유학생 유준영은 우연히 한 수도사가 1927년 발간한 ‘금강산에서 (In den Diamantbergen Koreas)’라는 여행기에서 당시까지 국내에 알려진 적 없는 18세기 후반의 금강산 그림 3점의 흑백사진을 보게 된다. 혹시 원본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그는 문제의 책이 쓰인 독일 남부 오버바이에른의 성 베네딕도회 상트 오틸리엔(Sankt Ottilien) 수도원을 찾았고, 그곳 박물관에서 사진에서 본 그림을 포함해 모두 21 점의 한국화가 담긴 화첩(畵帖)을 발견한다.
화첩의 그림들엔 ‘겸재(謙齋) 정선(鄭敾)’이란 낙관이 선명했다.
조선 최고의 화가로 불리던 겸재 정선의 그림이 왜 독일의 수도원에 있었을까?
- 겸재에 반한 푸른 눈의 수도사, 노르베르트 베버
겸재의 그림이 실린 ‘금강산에서’를 쓴 사람은 성베네딕도회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초대 원장 노르베르트 베버이다.1909년 성베네딕도회의 한국선교를 결정한 그는 1911년과 1925년 두 차례 한국을 방문하여 전국을 돌며 290여 장의 사진과 수많은 그림, 일기와 메모 등을 남겼다. 진정으로 조선을 이해하고 사랑했던 그는 일제식민지배 아래 사라져가는 고유의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1915년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Im Lande der Morgenstille)’란 책을 펴내고 1930년엔 같은 제목의 기록 영화까지 촬영했다. 1925년 6박 7일간 금강산을 두루 여행한 베버 신부는 외금강 온정리의 한 호텔에서 겸재 정선의 그림들을 접하게 된다. 금강산 전체를 아우르면서도 작은 암자와 계곡까지 빼놓지 않은 겸재의 표현 방식은 그를 매료시켰다. 성직자이자 화가이기도 했던 그는 금강내산전도(金剛內山全圖)를 포함한 정선의 21점이 담긴 화첩을 구입했고 한국의 미술을 유럽에 알리기 위해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으로 가져간다.
- 진경(眞景), 조선의 참모습을 담다
겸재 정선은 이른바 ‘진경(眞景)’을 확립하고 완성시킨 사람이다. ‘진경(眞景)’이란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린 그림’이 아니라 ‘대상의 참모습을 담아낸 그림’이다. 눈에 보이는 형태나 색채는 생략하더라도 대상의 본질은 정확하게 표현해내는 것이 진경의 핵심이다. 겸재의 대표작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는 진경 화법의 독창성을 명확히 보여준다.
겸재는 흰 화강암 바위로 이뤄진 인왕산을 검게 칠했다.
바위산의 중량감과 위압감,그 산세의 기상을 전달하기 위해 ‘흰 것을 검게 반전(反轉)’시킨 독창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 80년 만의 귀환, 그리고 영원한 안식
1991년 성 베네딕도회 한국 왜관 수도원의 선지훈 신부는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의 겸재 정선 화첩을 처음 접한다.
이후 선 신부는 화첩의 고국 반환 방법을 고민하게 되고, 2000년 동문 수학하던 예레미야스 슈뢰더 신부가 상트 오틸리엔의 수도원장이 되자 화첩 반환을 제안한다.그 무렵, 서구에서 겸재의 화첩은 고미술수집가들의 표적이 되고 있었다. 세계 각국의 경매회사들이 수도원을 찾았고, 뉴욕의 크리스티는 예상 경매가 50억 원을 제시했다. 2005년 8월,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은 한국의 형제 수도원인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 화첩을 돌려줄 것을 결정했다. 80년간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겸재 정선의 화첩이 드디어 조국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찾게 된 것이다.
신역사스페셜 12회– 수도원에 간 겸재 정선, 80년 만의 귀향 (2009.10.3.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