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3주간 화요일 (2021.03.09)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
흔히 이런 말을 듣습니다. “용서를 쉽게 하지마라, 그 사람은 자기 마음 편하려고 용서를 청하고 있다.” 용서라는 고귀한 행위로 왜곡해서 듣고 말합니다. 많이 헤갈립니다. 나 자신은 용서를 하지 못하는데 그 사람은 자기 편하려고 용서를 청하는 것을 볼 때 더 용서를 못하게 됩니다. 더 상처가 깊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에 따라 우리 마음은 완전히 닫힙니다.
이런 우리에게 주님은 ‘무자비한 종의 비유’(마태 18,23-34)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사실 ‘자비하신 임금의 비유’입니다. 임금의 자비에 1만 탈렌트 빚진 사람은 탕감을 받습니다. 빚을 탕감받은 그 종은 100데라리온 빚진 동료 종을 만나자 무자비하게 처리합니다. 예수님 시대의 화폐 단위를 알아야 합니다. 한 데나리온은 로마 은전으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고 한 탈렌트는 6천 데나리온에 해당되고 노동자 한 사람이 거의 20년 동안 벌어야 하는 엄청난 돈입니다. 그러니까 1만 탈렌트는 요즘 시세로 3조원 정도이고 100데나리온은 500만원 정도됩니다. 3조원과 500만원 이 둘은 하늘과 땅 차이보다 더 큰 차이입니다.
용서에 전전긍긍하는 우리는 이미 하느님께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로 용서의 자비를 받은 사람입니다. 내 중심으로 볼 것이 아니라 우리는 끊임없이 하느님 중심으로 우리 삶을 바라봐야 하지요. 용서받았음을 깊이 깨닫는 사람만이 진정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힘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 안에서 우리는 용서를 실천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용서할 때 우리는 치유의 길을 걷게 됩니다.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마태 18,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