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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묵상)주님 수난 성금요일(2021년 04월 02일) 사랑의 목마름

procurator 0 890 2021.04.02 16:41

주님 수난 성금요일(2021년 04월 02일) 사랑의 목마름


저는 봄이 활짝 피는 4월만 되면 기쁨보다는 아픔이 먼저 떠오릅니다. 2007년 4월 6일 성금요일 새벽 우리 공동체는 화재로 큰 아픔을 겪었고, 2014년 4월 16일에는 세월호 참사로 수많은 사람들, 그것도 어린 생명들이 죽음의 깊은 바닷물 속에서 산산조각 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들은 아직도 피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또 미얀마에서는 군부독재의 탄압으로 무고한 시민들이 총칼에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언제 종식될 지 모르는 코로나 때문에 조심하며 살고 있습니다. 


작년 스페인에서 코로나19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갈 때, 감염되어 중환자실에서 고생하다가 살아 돌아온 호세 형제는 자신의 체험을 제게 말했습니다. “입원해 있는 동안 제일 고통스러웠던 것은 질병 자체가 아니라 내 옆에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었어요. 아무도 내 옆에 올 수 없었어요. 그 힘든 나날을 혼자 견뎌야 하는 것이 제일 무섭고 고통스러웠어요. 정말 외로웠습니다.”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것이 고립, 외로움, 고독이라는 바이러스입니다. 스스로 고립시키기도 하고 외적인 다른 이유로 고립되기도 합니다. 이것이 사람을 죽이는 가장 무서운 바이러스입니다.


이 고통과 이 슬픔의 눈물을 누가 닦아주고 위로해 줄 수 있겠습니까? 이 허망한 죽음과 고통 앞에서 우리의 마음은 어쩔 수 없이 주님의 십자가를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특히 우리는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주님의 주검을 바라봅니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고 거기에 마음을 일치시킵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한테 무엇입니까? 십자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줍니까? 


무엇보다도 십자가는 우리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폭로합니다. 우리 자신의 겉모습을 적나라하게 벗겨버립니다. 제 자신을 비롯하여 우리는 말로는 ‘나는 죄인이다’ ‘내 탓이요’라고 하지만, 어떤 사안에 부닥치면 내 자신이 죄인인 것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의인인 양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합니다. 그러다가 내 자신이 남들한테 조금이라도 모욕당하고 업신여김을 받아 자존심이 상하면 참지 못합니다. 폭발합니다. 불평과 비난과 거친 언어의 화살을 쏘아댑니다. 더 나아가 의도적으로 우리 자신의 허물을 남들 앞에 끊임없이 감추고자 합니다. 그럴싸 하게 포장합니다. 십자가는 이러한 포장지를 벗겨버리고 벌거숭이로 만들어버립니다. 


우리 자신을 벗겨버리지 않는 십자가는 우리 자신들이 만들어낸 거짓 십자가, 황금 우상일 뿐입니다. 진정 주님의 피로 성화된 십자가 아래 있으면 우리는 우리 자신들이 참으로 죄인임을 깊이깊이 자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죄와 허물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죄인인 나 자신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십자가의 무게와 깊은 침묵 앞에 우리는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습니다. 베네딕도 성인은 당신의 규칙서 겸손의 장에서 정제되지 않은 단어를 사용하며 우리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일깨워줍니다. “나쁘고 부당하고 쓸모없는 종, 짐승과도 같은 처지에 있는 존재, 사람도 아닌 벌레, 사람들의 조롱거리, 백성들의 천덕꾸러기”라고 합니다. 이처럼 베네딕도 성인은 우리의 밑바닥까지 내려가라고 초대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앞에 겸손히 고개를 숙일 때 우리는 십자가에서 두 개의 목마름이 서로 만나는 신비를 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직전 “목마르다”(요한 19,28)고 부르짖으셨습니다. 이 외침은 단순히 육신적인 갈증을 호소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영원한 목마름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당신의 사랑을 깨닫기를 애타게 원하는 주님의 갈증입니다. 또 한편 이는 죄인인 우리 자신들의 목마름이기도 합니다. 죄와 허물과 나약함에서 우리를 해방시킬 유일한 분, 바로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근원적인 목마름입니다. 십자가에서 주님의 목마름과 우리 인간의 목마름은 이렇게 서로 만나고 하나가 됩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당신 사랑을 내어주시고 우리는 하느님께 우리의 사랑을 내어드리는 사랑의 자리가 바로 십자가입니다. 


강론 직후 바치는보편지향기도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누구를 위한 죽음이었지가 드러납니다. 오늘 성금요일에는 다른 주일과는 달리 특별히 10개의 보편지향기도를 바칩니다. 우선 교회를 기억하면서 교황님, 모든 성직자와 평신도와 예비신자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그러고는 갈라진 그리스도인들, 그러니까 개신교와 동방교회 형제들을 기억합니다. 그다음으로는 예수님과 혈통이 같은 유다인들을 위해 기도를 봉헌합니다. 그리고는 하느님은 믿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이들, 유대교인과 이슬람교인들을 깊은 유대 안에서 기억합니다. 다음으로 하느님을 믿지 않는 이들, 다시 말해서 불교도를 비롯하여 기타 종교인들과 무신론자들을 위시해서 하느님 없이 사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를 바칩니다. 그러고는 위정자들을 위하여 빌고, 마지막으로 여러가지 이유로 지금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기억합니다. 이처럼 보편지향기도를 통해 십자가의 주님 안에서 우리는 세상 모든 사람들을 기억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있는 것은 십자가 죽음이 우리 그리스도인들만이 아니라 인류를 위한 기도 자체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당신 팔을 활짝 벌려, 모든 시대, 모든 종교, 모든 계층의 사람들을 당신 안에 안으셨습니다. 주님의 손과 발을 뚫은 못은 쇠못이 아니라 사랑의 못이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모든 사람은 하나가 되고, 위로와 평화를 누립니다. 그래서 십자가 희생은 위대한 사랑의 기도 자체입니다. 손을 쥐면 주먹이 되지만, 손을 펴서 가지런히 합치면 기도하는 손이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은 기도하는 손입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주님을 따르는 우리는 무엇보다도 세상 모든 사람을 위하여 손을 모아 기도하는 영혼이 되어야 합니다. 십자가를 바라다볼 때마다 다른 이들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기도하는 의인보다 세상에서 강한 것은 없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역사의 방향키를 손에 쥐고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드러난 사랑의 기도는 우리 모두를 죽음의 아픔을 넘어 생명의 기쁨, 부활의 빛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오늘 1독서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 깊이 되새깁시다.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받은 , 하느님께 맞은 ,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이사 53,4-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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