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한국 전쟁이 발발한 지 70년이 되는 오늘,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고, 우리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기도하기 위하여 이 자리에 함께 모였습니다. 본래 오늘 전국의 각 교구에서 같은 시간에 미사를 봉헌하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주교회의에서 계획하였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각 교구별로 여건에 맞게 미사를 봉헌하기로 하였습니다.
지난 몇 년 간의 시간은 한반도에 전쟁의 기운과 평화에 대한 기대가 극렬히 교차했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2016년부터 2017년까지 북한에서는 4차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 5차 핵실험(2016. 9.9.), 6차 핵실험(2017. 9.3.)을 하면서 군사적 긴장이 고려되고 전쟁의 위기까지 걱정해야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2018년 평창 올림픽을 기점으로 펼쳐졌던 적극인 반전은 한반도에 평화가 깃들고 남북간의 관계가 대전환의 시기를 맞이하는 듯 했습니다. 남북한이 올림픽에 함께 참석하고, 남북 정상이 만나고 북미 정상 회담이 펼쳐지기도 하면서 새로운 평화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 평화의 여정은 아직도 많은 고비를 넘어야 하고, 함께 인내하며 서로 신뢰할 때 더욱더 결실을 맺게 되리라는 것을 최근에 더욱더 실감하고 있습니다.
저는 2018년 2월 11일 서울 남산의 국립극장에서 열린 북한 삼지연 관현악단 특별공연에 참관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2002년에 공연한 이후 북한의 공연단이 우리나라를 찾은 것은 16년 만의 일이었다고 합니다. 남북한의 가수들이 함께 어우러져 ‘우리의 소원은 통일’과 북한 노래 ‘다시 만납시다’를 불렀습니다. 감동적인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분위기를 묘사하자면 우리가 과거 텔레비전에서 봐왔던 가요무대(!)와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2월에 이어 4월에는 평양에서 ‘봄이 온다’라는 제목으로 남북평화협력 기원 평양공연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공연을 몇 번이나 인터넷을 통해 보면서, 그 당시 그 공연에 참석한 북한의 사람들은, 엄밀히 말하면 평양의 일부의 사람들은 공연을 보면서 어떤 표정을 지을까, 어떤 느낌을 받을까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보았습니다.
2015년 주교님들과 함께 평양을 방문했을 때 호텔에 있는 텔레비전을 시간이 날 때 마다 켜서 보곤 했습니다. 대부분의 노래들이 이념적인 가사를 담고 있고, 아주 아름답고 서정적인 멜로디와 가사로 시작된 동요와 같은 노래들도 혁명에 대한 찬양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명태” 하나를 가지고도 그렇게 신나게 노래하는 강산애씨를 어떻게 볼 것이며, 실향민인 강산애씨 부모님을 추억하는 노래 ‘두만강 푸른 물에 노젓는 뱃사공을…’ 이런 노래를 어떤 마음으로 들을까? 상상하며 보았습니다. 남쪽의 ‘놀새떼’라고 소개한 윤도현씨의 멘트와 머리를 돌리며 현란한 음악을 연주 하는 YB밴드를 어떻게 지켜볼 것인가? 관객과의 호응을 유도하는 YB밴드에 어떻게 화답?! 할 것이며, 노래를 따라할 것인가?... 저도 잘 따라하거나 이해하기 난해한 아이돌 그룹 ‘레드벨벳’이 그 분들에게는 어떻게 비칠지… 등등.
만일 이런 교류조차 없었다면 근 70년 동안 서로의 생각과 환경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도 없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런 다름 속에서도 노래를 통해 전달되는 같은 정서적 공통점이 있고, 함께 공감할 수 있고, 같은 민족으로 느낄 수 있는 무엇이 또한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만나지 못한다면 대화를 나눌 수도, 마음을 나눌 수도 없을 것 입니다.
저희 베네딕도 수도원과 수녀원은 북한에서, 중국에서 생활하다가 전쟁이 일어난 전 해에 공산당 정권에 의해 수도원이 폐쇄되고 선배 수도자들이 죽음을 당하거나 수용소의 생활을 3년 반 정도 하며 온갖 고초를 겪기도 하였습니다. 그때 순교하신 38분은 지금 시복 절차가 진행되고 있기도 합니다.
베네딕도회 뿐만 아니라, 메리놀회 신부님들과 수녀님들,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가 평양을 기반으로 북한에서 활동을 하셨습니다.
1954년에 북한에서 살아남은 독일 수도자들은 추방을 당했다가 그 후 다시 한국으로 파견되어 오셨습니다. 제가 수도원 입회한 90년 초반에서 2000년대 까지도 북한에서, 연길에서 생활하셨던 독일인 수도자들이 함께 생활하였습니다. 2년 전 10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신 한국인 수사님을 마지막으로 우리 공동체에도 북한에서 수도생활을 했던 선배 수사님들이 다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104세의 수사님은 서울에서 태어나셔서 북한의 덕원 수도원에 입회하시고, 1949년 5월 11일 수도원이 해산되자 부산까지 피난하셔서 중노동을 하며 지내시다, 왜관에서 수도생활이 시작되자 다시 합류하셔서 그렇게 오랫동안 사시며 역사의 증인이 되셨습니다.
북한에서 수도생활을 하다가 고초를 겪으셨고 다시 왜관에 합류하신 한국인 수도자들이나, 독일에서 다시 파견되신 분들이 우리 공동체에 물러주신 것은 미움이 아니라, 하느님 섭리에 대한 깊은 신뢰였습니다. 웬만해서는 다시 한국에서 수도생활을 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한국에서 지내면서도 먼저 떠난 선배들을 생각하며 분노와 미움의 감정으로 지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어려움을 겪어내신 분들은 그러한 미움과 증오가 아니라, 그러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 다시 그 곳으로 돌아가서 수도생활을 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램, 남북한이 평화롭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기도로 과거의 어두웠던 시간들을 하느님께 봉헌하셨습니다.
6.25 한국 전쟁 70년을 맞이하여 한국교회는 저녁 9시에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며, 주모경 바치기 운동을 적극적으로 실시하고 있습니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오 18, 19-20)라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기도가 비록 작게 느껴지고 응답이 더디 오는 것으로 보일 수 있으나, 우리가 함께 바치는 기도를 통해 이 땅에 전쟁의 구조, 미움의 구조, 경쟁과 대립의 구조가 해체되고, 화해와 협력과 상생과 평화의 체제가 구축되리라는 희망을 가집니다. 작은 것도 보시는 하느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참된 화해와 형제애, 평화를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2020년 6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