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박물관 문화 순례] 왜관수도원 100주년 역사전시관 (중) (가톨릭 신문, 2015년 7월 5일)

procurator 0 2,256 2015.07.10 09:06

[박물관 문화 순례] 왜관수도원 100주년 역사전시관 (중)

 
한국교회 전례 쇄신 이끈 수도회 발자취 볼 수 있어
발행일 : 2015-07-05 [제2951호, 12면]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100주년 기념역사전시관에는 한국천주교회 전례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사진이 한 장 있다. 1940년 7월 14일, 사제 수품 은경축을 맞은 연길수도원의 백화동 테오도로(Theodorus Breher, 1889~1950) 아빠스 주교가 사제단, 신자들과 함께 거행한 장엄 미사로, 오늘날처럼 ‘신자들을 향해’(versus populum) 미사를 거행하고 있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열리기 20년 전인 당시 유럽에서는 주교좌성당에서 교구장 주교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적’ 미사를 공식적으로 거행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었기에 지금 봐도 참으로 혁신적이고 놀라운 광경이다.

1909년 서울 백동수도원에서 출발한 베네딕도회는 1920년 원산대목구와 연길대목구를 맡으면서 1927년 함경남도 덕원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북간도 연길에도 연길수도원을 세웠고 아빠스들은 대목구장으로 주교품을 받았다. 20세기 초 유럽 교회에서 베네딕도 수도원을 중심으로 전례운동이 발전했듯이 한국의 베네딕도회원들도 1930년대부터 미사 개혁을 중심으로 ‘전례운동’을 추진했다. 그 바탕에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비체와 하느님 백성으로 바라보는 공동체적 사상이 숨쉬고 있었다.

덕원과 연길의 베네딕도회원들은 서로 협조하며 전례운동을 일관성 있게 추진해 연길수도원의 「미사 규식」과 덕원수도원의 「미사 경본」이 만들어지게 됐는데 이는 특히 미사 전례 쇄신의 시발점이자 원동력이었다.

덕원수도원에서는 평양에서 순교한 ‘하느님의 종’ 홍 루치오(Lucius Roth, 洪泰華, 1890~1950) 원장 신부의 주도로 1930년 초부터 한국인 평수사와 수녀를 위해 ‘한국어 미사 통상문’을 등사판 책자로 펴내는 작업을 시작해 1932년 대림 제1주일부터는 매일의 미사경문을 한국어로 번역해 신자들에게 나누어줌으로써 신자들이 더욱 충만하고 능동적으로 성찬례에 참례할 수 있게 됐다.

연길수도원에서는 1931년, 연길대목구 용정본당 주임 박 콘라도(Conradus Rapp, 朴敎範, 1896~1932) 신부가 중심이 돼 미사를 거행하는 4가지 양식(규식)을 담은 「미사 규식」을 우선 등사판으로 만들어 보급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식 출판을 준비하던 박 콘라도 신부는 1932년 6월 5일 길을 가던 중 일본군에게 무참히 살해당하고 말았다. 이후 배 발뒤노(Balduinus Appelmann, 裵光彼, 1902~1975) 신부가 박 신부의 유지를 받들어 1933년 정식판 「미사 규식」을 발간했다. 이 소책자를 저렴한 값에 구입할 수 있게 된 신자들은 미사의 구경꾼이 아닌 능동적 동참자로서 힘차고 아름다운 소리와 리듬으로 한국어 미사경문을 낭송하며 사제와 함께 성찬례를 거행하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1933년 초, 덕원수도원에서 낱장 한국어 미사경문을 한 권으로 묶어 최초의 ‘한국어 미사 경본’을 등사본으로 펴냈다. 이를 토대로 1935년에 「미사 경본-주년 미사」와 「미사 경본-성인 첨례 미사」를, 사순 시기 미사경문들을 보충해 「미사 경본-봉재 때 미사」를 출간했고, 마침내 1936년 체계적이고 완전한 형태의 「미사 경본」이 세상에 나왔다. 

「미사 규식」과 「미사 경본」은 수도원은 물론 연길대목구와 원산대목구 본당들에서 신자들을 미사에 능동적으로 참여시킨 교과서 역할을 했다. 원산대목구 회령본당 미사 전례에 관해 당시 본당 수녀였던 제르트루트 링크(Gertrud Link, 1908~1999) 수녀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모든 미사는 평신도와 사제가 한국어로 주고받는 공동미사다. 미사 때마다 바뀌는 기도문은 소년이나 선창자가 독서대에서 낭독한다. 예물봉헌 때 신자들은 제대 앞 계단까지 나가 예물을 바쳤고 영성체가 시작되면 수많은 신자가 기뻐하며 제대 앞으로 나아간다. 제대 쪽으로 다가가는 신자들을 막는 난간은 없다. 미사 전체가 역동적이고 다채롭다. 신영세자들은 그의 감각과 정신과 마음을 모두 에워싸는 이런 신앙생활에 기꺼이 참여하고 싶다고 느낀다. 미사에서는 각자가 주인공이다. 그는 스스로 기도하며 스스로의 힘으로 봉헌한다.”

성음악은 신자들을 미사 전례에 더욱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한다. 한국천주교회 최초의 공식적인 성가집인 「朝鮮語聖歌」(조선어성가)는 서울 백동수도원에서 1923년 첫 출판됐고 1928년 재판됐으며, 10년 후인 1938년에는 가장 뛰어난 성가집이라 할 「가톨릭성가」가 출간됐다. 덕원수도원의 진 볼프라모(Wolframus Fischer, 陳道光, 1903~1938) 신부가 이전 성가책에서 진부하고 아름답지 못한 곡을 빼고 아름다운 가사와 서정적인 멜로디의 새 노래들로 엮어 전례주년에 따라 213곡을 작곡, 편집했다. 이 두 성가책의 많은 곡들이 현재 한국교회가 사용하는 「가톨릭성가」에 ‘Trad. Melody’(전통 멜로디)로, 작곡자와 출처 미상곡으로 들어가 있다. 이 지면을 빌려 필자는 한국교회가 준비하고 있는 새 성가책에는 이 곡들의 작곡자와 출처를 정확히 밝혀주길 희망한다.

성당 건축 분야에서도 연길수도원의 안 알빈(Albuinus Schmid, 1904~1978) 신부는 쇄신과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다. 그가 설계 건축한 연길대목구 돈화본당 제대는 신자들을 향해 놓여 있다. 알빈 신부는 왜관수도원에 재파견된 후에도 수많은 성당을 전례개혁 정신에 따라 건축했다.

베네딕도회 수도 삶에서는 전례가 신앙생활이고 신앙생활이 곧 전례다. 그들이 거행하는 전례는 그들 삶의 역동성을 드러낸다. 이러한 전례 중심적인 수도 생활의 모태 안에서 많은 전례서들이 탄생한 것이었다. 이 땅에서 베네딕도회원들이 발간한 많은 전례서들은 교회와 신자들을 위한 봉사와 사랑을 증언하고 있다.

※문의 054-970-2000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인영균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수련장) 
사진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