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티아고…’ 낸 인영균 신부, 순례길 중간 라바날수도원에서 5년간 만난 순례자들 사연 담아
“저는 라바날(Rabanl)수도원에 한국인 순례자가 오시면 ‘일단 멈추시라’고 권했습니다. 한국 사람은 산티아고 순례를 와서도 대부분 바쁩니다. 빽빽한 계획, 목표를 다 지키려 하지요. 그러나 제 권유를 듣고 멈춘 분들은 더 큰 것을 얻어갔다고 하시더군요.”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인영균(56) 끌레멘스 신부는 2015~2020년 스페인 라바날수도원에 선교사로 파견됐다. 산티아고 순례길 중간에 있는 작은 수도원이다. 그는 최근 ‘나는 산티아고 신부다’(분도출판사)를 펴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룬 책이 넘쳐나지만 이 책은 카미노(산티아고 순례길)의 역사적·신앙적 의미와 영적 안내자로서 자신이 겪고 느꼈던 일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는 이 책에서 프랑스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까지 순례길을 3등분한다. ‘몸의 카미노’ ‘정신의 카미노’ 그리고 ‘영혼의 카미노’다. 라바날수도원은 3분의 2지점, 산티아고 대성당까지는 마지막 보름 정도 여정이 남는다. ‘영혼의 카미노’ 출발점이다. 출발부터 1개월여에 걸쳐 갖은 고난을 겪은 순례자들은 이 지점쯤 되면 몸과 정신이 적응된다. 자칫 ‘왜 걷는가’를 잊고 관성적으로 ‘그냥 걷게 되는’ 지점이다. 그래서 멈춤이 필요하고, 수도원은 이틀 이상 묵을 사람만 숙박 신청을 받았다. 상담과 경험을 나누는 과정을 통해 영혼의 순례를 완성할 수 있는 영적 체력을 재충전하는 것이다.
순례자들의 사연은 각자 다르다. 순례를 꿈꾸다 세상을 떠난 가족의 유골을 들고 찾아온 이도 있었고, 고장 나 잘 구르지 않는 자전거를 끌면서 걷는 청년도 있었다. 일부러 ‘천천히 가기 위해서’였다. 순례는 ‘기적’의 연속이다. 순례자들은 카미노에서 육체적·정신적·영적 고난이 닥칠 때마다 어디선가 나타난 ‘천사’들의 도움으로 순례를 이어간다. 인 신부도 순례길을 두 번 걸었다. 길가의 공동묘지에서 ‘그대의 현재 모습이 나의 과거 모습이었고, 나의 현재 모습이 그대의 미래 모습이다’라는 글귀를 본 그는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두라’는 베네딕도 성인의 권고를 떠올린다. 수도자에게도 순례길은 스승이었다.
순례자들의 공통점은 간절함이자 목마름이었다. 5년 파견을 마치고 책의 초고를 쓰면서 인 신부 머릿속에 떠오른 한마디는 ‘카미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수’였다. 순례자들의 간절한 목마름을 적셔주는 생명수다. “카미노는 여가나 건강관리를 위한 길이 아닙니다. 야고보 성인의 무덤이라는 거룩한 장소를 향해 가는 길이기 때문에 영적인 길이 되는 것이고 국적에 관계없이 서로를 돕는 천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는 “그렇지만 ‘찐(진짜)카미노’는 스페인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진짜 카미노는 순례를 마친 후 떠나온 자리, 일상의 삶으로 돌아갔을 때, 그곳에서 내가 천사가 돼 남을 도울 때 비로소 시작됩니다.”
27일 오후 7시 서울 가톨릭회관에선 출판기념회를 겸한 북콘서트가 열린다. 인 신부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사람, 갈 사람, 영적 순례에 관심 있는 모든 이와 함께할 생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