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출신 신학자이자 영성가 토마시 할리크 몬시뇰이 5월 1-5일 처음으로 한국에 방문해, 전주와 광주, 왜관, 서울에서 강연한다.
(주 = 몬시뇰은 오늘날 전통 있는 성당 신부나 오랜 성직 생활로 교회에 공이 큰 원로 성직자에게 교종청에서 주는 명예의 칭호다.)
할리크 몬시뇰(74)은 서구 그리스도교가 침체하는 가운데, 유럽 국가 중에서 무신론자가 가장 많은 체코에서 오늘날 종교의 현실과 과제를 통찰하는 연구자다. 이번에 강연할 주제는 '위기의 시대, 신앙의 길을 찾다'로, 특히 팬데믹 이후 경제 문화적 어려움과 우크라이나 전쟁처럼 파괴적 상처로 점철된 현대 사회에서 종교가 제시할 수 있는 새로운 영성을 나눈다.
그는 칼 융이 개인의 인생을 하루에 빗댄 것을 적용해, 오늘날 그리스도교가 처한 현실을 하루가 저물어 가는 ‘오후’라고 본다. 지금 교회는 한창 성장하는 ‘아침’이 아니라 다음 날의 새로운 모습을 준비해야 하는 ‘오후’를 잘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러기 위해 독선적이고 호전적인 종교 문화가 아니라 상처받은 이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며 희망을 나눌 영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교회는 갇혀 있지 말고 세상으로 다가가는 야전병원이 돼야 한다고 프란치스코 교종이 강조하듯, 할리크 몬시뇰도 교회가 상식과 포용의 길로 나아가길 바란다.
강연을 주최한 우리신학연구소 등은 이번 강연이 ‘오후’를 맞고 있는 한국 사회의 종교 문화에도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라고 밝혔다.
할리크 몬시뇰은 체코 프라하 카렐 대학에서 사회학과 철학,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공산 정권인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심리치료사로 일하면서, 1978년 동독에서 비밀리에 사제 서품을 받고 지하 교회에서 활동했다. 1989년 비폭력 민주화 투쟁인 ‘벨벳 혁명’으로 공산 정권이 무너진 뒤 바츨라프 하벨 대통령(1993.2–2003.2 체코 1대 대통령)의 외부 자문단으로 일했고, 체코 주교회의 총대리로 봉직했다. (주 = 체코슬로바키아는 1993년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나뉘었다.)
1992년 요한 바오로 2세 교종은 그를 교종청 비신자대화평의회(지금의 문화교육부) 위원으로 임명했다. 같은 해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에서 실천신학 교수 자격증을 취득했고, 영국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미국 하버드 등 여러 대학에서 초빙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프라하 카렐 대학 사회학 교수로 있다.
그가 쓴 책들은 세계 20여 개 언어로 번역 출간됐다. 종교간 대화, 저술과 교육 활동, 영적 자유와 인권 보호 증진에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 2014년 종교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템플턴 상, 2010년 로마노 과르디니 상 등을 받았다. 한국에서도 “하느님을 기다리는 시간”, “신이 없는 세상”, “상처 입은 신앙”, “고해 사제의 밤”을 볼 수 있다.
이번 한국 방문에 맞춰 “그리스도교의 오후”(분도출판사)가 출간됐다. 그는 그리스도교 역사 시작부터 근대 무렵까지, 곧 제도적, 교의적 구조를 세워 온 시기를 ‘오전’으로, 이어서 이런 구조를 뒤흔든 ‘정오의 위기’를 지나,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오후’로 넘어가는 문턱에 있다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과거와 현재의 교회와 신학을 성찰하고 통렬하게 비판한다. 무엇보다 ‘보편적 그리스도’를 탐색하므로, 성숙한 삶을 찾고 삶의 의미를 묻는 무신론자나 비종교인에게도 도움될 것이다.
* 강연 일정
- 5월 1일(월)-2일(화) : 전주교구 치명자산 성지 평화의 전당
- 5월 3일(수) 오후 2시 30분 : 광주가톨릭평생교육원 대건문화관
- 5월 4일(목) 오전 9시 30분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 5월 5일(금) 오후 2시 : 서울 마리스타교육관 대강당(합정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