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과 분열의 시대… 리더의 조건은 균형 잡힌 판단과 포용력이다
베네딕토 성인(480?~547?)이 남긴 「베네딕도 규칙서」(이하 규칙서)는 수도 생활에 요구되는 핵심 사항들을 체계적으로 서술하면서 이론과 규율을 잘 조화시킨 것으로 평가받는다. 머리말과 함께 73장으로 구성된 규칙서는 모든 장이 의미를 지니지만, 특별히 아빠스에 대해 언급한 부분은 지도자가 갖춰야 할 자질과 리더십을 엿보게 한다.
성인이 살았던 시대는 현시대와 다를 바 없는 혼탁한 시기였다. 로마 문명이 쇠락하고 암흑 시기가 시작되던 교회 분란의 때였다. 당시 성인이 제시한 지도자의 모습은 엔데믹 등으로 혼란스러운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허성석(로무알도) 신부가 「코이노니아」 40집에 발표한 ‘베네딕도 성인에게 배우는 리더십’ 연구 논문을 통해 성인이 강조한 지도자의 자질을 알아본다.
첫 번째로는 ‘분별력’이 꼽힌다. 규칙서 64장 ‘아빠스의 선출’에서 성인은 ‘어떤 것을 명령할 때 하느님에 관한 것이든 세상일에 관한 것이든 분별 있고 절제 있게 하라’(17절)고 밝힌다. ‘만일 내가 내 양 무리를 심하게 몰아 지치게 하면 모두 하루에 죽어버릴 것’(창세 33,13)이라는 말씀을 언급하고 ‘덕행의 어머니’라고 표현하며 분별력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
어떤 결정을 할 경우의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올바른 ‘판단력’도 지도자가 갖춰야 할 자질이다. ‘만일 아빠스가 정당한 이유가 있어서 어떤 사람의 서열을 바꾸는 것이 적합하다고 판단할 경우 그렇게 할 수는 있다’(2,19) 등을 통해 규칙서 곳곳에서 아빠스에게 판단의 몫을 맡기는 것을 볼 수 있다.
‘결단력’도 요청된다. 성인은 ‘결정권은 아빠스에게 있고 그가 더 바람직하다고 판단하는 것에 모든 이는 순종할 것이다’(3,15)는 말로 아빠스의 결정을 부각한다. 식별을 통한 곧은 판단 이후에는 결단력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자기가 돌보는 형제들 수효가 얼마인지를 알아야 하며, 자기 영혼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모든 영혼에 대해 주님께 해명해야 함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2,38)는 부분에서는 지도자가 갖춰야 할 ‘책임감’을 일깨운다.
‘포용력’도 중요하다. ‘잘못한 형제들을 온갖 염려를 다 해 돌보고 지혜로운 형제들을 보내 흔들리는 형제를 남모르게 위로하고 격려하며 사랑을 확인시켜야 한다’(27,1~4)는 내용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연민이 깃든 포용력이 아닐 수 없다.
시편 낭송 순서에 대한 언급(18,22)이나 수도자 의복에 대한 장에서 원칙만 제시하고 편리하거나 더 나은 방안(55,7)을 구하도록 한 것에서는 상황에 늘 열려있는 지도자의 ‘개방성’을 볼 수 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용, ‘균형감’도 지도자에게 필요한 능력이다. 늘 균형과 조화를 유지하려 노력했던 성인처럼 규칙서에는 각 사람의 상황과 입장에 따른 적절한 권고가 담겼다. 당가 역할을 맡은 형제의 힘듦을 배려하고(31,17) 병든 형제가 봉사하는 형제들을 근심시키지 말아야 한다(36,4)는 내용 등이 대표적이다. 서로 반대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배려하는 됨됨이다.
허 신부는 아울러 규칙서에서 드러나는 성인의 리더십을 ▲수평적 리더십 ▲중용의 리더십 ▲신뢰의 리더십 ▲인간 본위의 리더십 ▲본질지향의 리더십 ▲솔선수범의 리더십으로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