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지키는 인영균 끌레멘스 신부가 순례자에게 남긴 편지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 세계에서 빠르게 퍼지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에 혼란스러워 하는 유럽 상황을 생생하게 전했다.
인영균 신부는 18일(현지시간) 페이스북에 편지를 올렸다. 그는 “지금 한국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많이 진정돼 가고 있어서 다행”이라며 “유럽은 이제 시작인 듯 하다. 저 멀리 있는 것인 줄 알았는데 막상 사태가 급박해지니 유럽 여러 나라 정부들도 불안해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산티아고 순례길도 코로나 바이러스 여파에서 비껴나가지 못했다는 그는 “통상 3월이면 순례자들이 점차 많아지는 때인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금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순례자가 한 사람도 없다. 이 정도까지 심해질 줄은 생각도 못했다”고 전했다. 또 스페인 모든 교구는 성당 문을 닫고 장례 미사를 비롯한 신앙 활동을 잠정 중단한 상태라고 밝혔다.
인영균 신부는 “언제 산티아고 순례길이 정상화될지 막연한 상황”이라며 “특히 내년 2021년은 산티아고 성년인데 걱정”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참으로 많은 기도가 절실히 필요하다”며 “순례자 여러분의 기도 부탁 드린다. 특히 아무 보살핌 없이 돌아가시는 분들을 위해 기도를 청한다”고 덧붙였다. 스페인은 유럽에서 이탈리아 다음으로 상황이 심각한데 세계 각국의 코로나19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사이트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19일(현지시간) 기준 스페인 누적 확진자는 1만7,395명, 누적 사망자는 803명으로 집계됐다.
한편 산티아고 순례길은 예수의 제자 중 하나인 야고보(산티아고)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까지의 길을 말한다. 인영균 신부는 2016년 5월 스페인 레온주 라바날 델 카미노 베네딕도 수도원으로 파견됐는데, 이 수도원은 산티아고 순례길의 길목에 위치해 있다. 순례자들이 고단한 순례길 중 휴식과 안정을 위해 잠시 찾는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박민정 기자 mjmj@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