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선교사들이 모은 한국 유물 1700점… '겸재 화첩' 등은 반환
[독일 상트오틸리엔 수도원]
노르베르트 베버 대수도원장, 1911년 첫 한국 방문해 유물 수집
2005년 겸재 화첩 반환한 데 이어 식물 표본 420점·17세기 익산 호적·최근 전통 남성 혼례복도 국내 기증
입력 : 2020.03.17 03:00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최근 독일 뮌헨 근교에 있는 상트오틸리엔 수도원 선교박물관이 소장했던 한국 혼례복을 기증받아 국립민속박물관에 전달했어요. 1960년대 제작된 전통 남성 혼례용 단령(團領)이죠. 단령은 조선시대 깃을 둥글게 만든 관복으로, 예복용과 직무용으로 나뉩니다. 당시 제작된 단령은 현재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어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해요. 그런데 이 뉴스를 접하고 "상트오틸리엔 수도원이라고? 거기서 한국 유물을 기증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닌 것 같은데!"라고 한 사람이 많았죠. 왜 그럴까요?
290장의 사진 담은 '고요한 아침의 나라'
"저걸 좀 봐. 색안경 쓴 서양 사람이 나귀를 타고 가네!" 1925년, 일제의 식민지였던 한국 땅을 방문해 금강산과 함경도·북간도를 두루 다니던 독일 선교사가 있었어요. 그의 이름은 노르베르트 베버(1870~1956), 가톨릭 교회의 수행 공동체인 성 베네딕도회 소속 상트오틸리엔 수도원의 총아바스(대수도원장)였어요. 그의 한국행(行)은 20세기 초 한국 천주교 선교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습니다. 성 베네딕도회는 1909년 수도사 두 명을 한국으로 파견해 서울 백동(지금의 혜화동)에 수도원을 세우고 교육과 선교 사업을 펼쳤어요. 1927년엔 함경도 덕원으로 수도원을 옮겨 천주교 원산·연길 교구를 담당했죠. 한편 1945년 광복 이후 북한에 들어온 소련군과 북한 정권에 고초를 겪은 뒤 1952년 경북 왜관에 정착하게 됩니다.
베네딕도회의 한국 파견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 베버 총아바스였습니다. 미지의 나라 한국에 관심이 많던 그는 1911년과 1925년 모두 8개월에 걸쳐 한국을 방문했지요. 여기서 한국의 전통문화와 풍습에 심취해 유명 사찰이나 관혼상제 예식이 거행되는 곳을 찾아 기록과 사진을 남겼습니다. 그 첫 결과물이 1915년 간행된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였습니다. 290장의 사진과 함께 한국 문화를 유럽에 알린 450쪽의 저서였습니다. ◇1920년대 한국을 영상으로 기록
1925년 두 번째 방문에서 베버 총아바스는 아예 '첨단 기기'까지 동원했습니다. 그는 촬영기사를 대동하고 당시엔 '커다란 상자'였던 촬영기를 준비해 한국 곳곳의 산하와 사람들을 영상에 담았어요. 금강산의 절경, 즐비한 초가집들 사이로 갓을 쓰고 지나가는 서울 시민들, 시내에서 빨래하고 우물가에서 물동이를 머리에 인 아낙들, 시장에서 주판을 써서 거래하는 사람들…. 과거 금강산 장안사와 서울 혜화문, 순국 직후 안중근 의사 유족의 모습도 그가 촬영한 필름 속에 들어
있었습니다.
베버 총아바스는 한국 문화 중 특히 효도의 전통에 깊은 감명을 받았는데 "이런 내면화된 겸손이야말로 가톨릭이 뿌리내릴 수 있는 좋은 토양"이라 여겼습니다. ◇한국 첫 양봉기술 교재 등 반환
한국 문화에 심취했던 베버 총아바스는 여러 문화유산을 입수해 상트오틸리엔 수도원으로 가져갔습니다. 이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진경산수화의 거장인 겸재 정선의 화첩 21폭이었어요. 이 수도원 선교박물관 측은 "현지 유물을 수집한 목적은 그 지역을 널리 알리려는 데 있었고, 지금도 박물관의 한국 유물은 동방의 놀라운 나라를 유럽인에게 알리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합니다.
현재 이 박물관에는 한국 유물 1700점이 소장돼 있어요. 이 중 겸재 정선 화첩은 2005년 영구 대여 형식으로 한국에 반환됐습니다. 이어 이곳에 있던 식물 표본 420점, 17세기 익산 호적, 한국 첫 양봉기술 교재 '양봉요지', 18세기 조선 갑옷 면피갑이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이번에 귀환한 혼례복은 1959년 왜관수도원에 파견된 보나벤투라 슈스터 수사가 수집한 것이라고 합니다.
[베버 수도원장이 1925년 찍은 영상, 당시 독일 100여 개 극장서 상영]
노르베르트 베버 총아바스가 1925년 한국에서 촬영한 필름은 총 길이가 1만5000m에 달할 정도로 방대한 분량이었어요. 그는 이 필름을 토대로 무성영화를 만들어 독일 100여 개 극장에서 상영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무렵 독일 나치 정권이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을 폐쇄할 때 한 수도자가 이 필름을 숨겨 놓았는데 전쟁이 끝난 후 행방을 알 수 없었죠. 그러다 1977년 수도원 지하실 공사 때 우연히 필름을 포함한 귀중품들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영화는 2009년 왜관 베네닉도미디어에서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란 제목의 DVD로 출시해 '보물급 자료'란 호평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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