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진짜 순례길은 우리 삶의 자리랍니다."(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4월 8일)

한국인 최초 산티아구 순례길 선교사 인영균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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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영균 신부(왼쪽에서 두 번째)가 라바날 델 카미노 수도원에서 수도자와 순례자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16년 11월 22일 스페인 사모스(Samos) 수도원 성당에 털썩 주저앉은 그는 결심했다. 모든 걸 포기하기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버틸 힘이 바닥이 났다. “애초 겨울 순례길은 무리였어. 폭우와 눈보라를 뚫고 한 달을 걸어 여기까지 온 것만도 다행이야. 여기서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거야.” 다음날 아침 수도원 침실 창밖에 피어오른 쌍무지개를 본 그는 무의식적으로 벌떡 일어나 다시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섰다.

영적 샘물 나눠주기 

부친이 위독해 스페인에서 일시 귀국한 인영균(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신부가 2년 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을 걷던 모습이다. 그는 스페인 레온 주 아스토르가 라바날 델 카미노(Rabanal del Camino)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에서 한국인 최초로 순례자를 사목하고 있는 선교사다. 2016년 5월부터 이 수도원에 살면서 목말라하는 순례자들에게 영적 샘물을 나눠주고 있다. 

“삶의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이 길을 걷습니다. 길에 들어서는 모든 이가 신원이 바뀌지요. 종교, 국적, 인종, 직업, 나이와 상관없이 ‘순례자’가 되니까요. 순례자이기에 길 위에 다른 순례자에게 자기 마음을 열게 됩니다.”

그는 “순례란 뚜렷한 목적지가 있고 그 목적지를 향해 한 발 한 발 걸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목적지가 없으면 순례가 아니라 방랑이나 나그넷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성 야고보 사도의 무덤을 찾아가는 산티아고 순례길은 목적지가 뚜렷하다. 

“이 길은 9세기부터 시작해 1200년이 넘은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긴 세월 수많은 순례자가 야고보 사도를 통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최종 목적지는 바로 주님이시죠.”

인 신부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두고 ‘정직한 길, 영적인 길’이라고 했다. “순례자는 길 위에서 육체적, 정신적 한계를 알게 되고 모든 것이 욕심인 것을 깨닫는다”면서 “자신의 정직함과 대면하게 된다”고 했다. 이어 “자신을 버리고 나면 관대함과 배려, 나눔이 일어나는데 하느님과 그분이 보내준 천사와 함께 걷고 있음을 체험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실 산티아고 순례길은 ‘가짜’고 진짜 순례길은 자신이 사는 ‘삶의 자리’입니다. 참된 순례길은 우리 일상에서도 주님을 향해 온몸으로 걷는 게 아닐까 합니다.”



하느님을 향한 순례 

산티아고 순례길은 성 베네딕도회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9세기 중반 카알 대제는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고 순례길을 정비했다. 이때 순례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곳곳에 성당과 숙소를 짓고 성 베네딕도회에 관리와 봉사를 맡겼다. 인 신부가 지내고 있는 라바날 수도원에는 현재 세 명의 수도자가 살고 있다. “5월부터 10월까지 순례자들을 받는데 조건이 있습니다. 무조건 이틀 이상 묵으면서 수도자들과 함께 기도하고 식사하면서 피정을 해야 합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수도자와 한 공간에서 기도하며 머물 수 있는 공간은 이곳이 유일합니다. 정주와 순례는 한 몸이지요. 정주는 한 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향해 더 깊이 순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 신부는 “순례자들이 라바날 수도원에 머물면서 지금까지 왔던 길과 앞으로 갈 길의 의미가 달라졌음을 깨달을 때 가장 보람 있다”고 했다. 

라바날 델 카미노 수도원 주소 : Monasterio Benedictino San Salvador del Monte Irago 24722 Rabanal del Camino, Len, SPAIN, 전자 메일 : inclemens1@gmail.com, 카카오톡ID : inclemens

글=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사진=인영균 신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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