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정래수 기자]1961년 지어진 강경성지성당(주임신부 여준구)은 건축에 조예가 깊었던 보드뱅 신부가 설계했는데 아치형 구조가 독특하다.
2015년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650호 지정된 강경성당은 1961년 당시 신축 때 모습으로 복원하는 데 중점을 두고 개축에 들어가 성당 내부 마룻바닥과 3개의 성당 문을 교체했고, 막혀 있던 제대 전면을 철거한 뒤 3개의 아름다운 창호와 천장 전체가 드러나도록 했다. 제단 창은 원형대로 복원하지 않고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에 의뢰해 유리화로 제작했으며, 성당 지붕과 정문 화강석 계단, 성당 외부 창호 등을 보수하고 복원했다.
본당 입구에는 성모마리아 상이 있는데 소나무가 있는 화단과 묘하게 잘 어울린다.
성모마리아 상 옆에는 작은 목조로 만든 배가 있다. 이게 바로 한국인 최초 천주교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1821∼1846) 신부의 희년을 맞이해 재현 복원된 작은 목선 '라파엘호'다. 김대건 신부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탄생' 촬영에 사용됐으며, 논산시에서 지원, 제작됐다.
성당 뒤편에는 하얀색의 작은 건물이 하나 있다. 바로 천주당이다. 본당 외 여기서 작은 예배를 드리는데 이 천주당은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조선인 최초로 사제 서품을 받은 상해의 금가항 성당 모양을 복원한 것이다.
김대건 신부는 1845년 8월 중국 상해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뒤 작은 배를 타고 귀국 길에 오르다 풍랑 때문에 제주도 해안에 닿는다. 거센 풍랑을 맞아 28일간의 표류 끝에 도착한 김대건은 10여명의 동행자와 첫 미사를 봉헌한 뒤 용수리 포구에서 배 수리를 마치고 강경으로 떠났다.
강경에 도착한 그는 한달 동안 성사를 집전하며 신자들을 돌보았다. 그리고 이듬해 순교의 길을 걸을 때까지 이 땅에 믿음의 씨앗을 심고 뿌리를 내리기 위해 힘썼다.
그리고 1961년 김대건 신부의 첫 사목을 기념하기 위해 그의 첫 사목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강경성지성당이 지어진다. 본당은 보드뱅 신부의 설계대로 지어졌는데, 배를 뒤집은 듯한 아치형으로 지어져서 완공 당시의 구조와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2019년 5월에는 본당 부지 내 공사를 통해 김대건 신부 교육관과 김 신부가 서품을 받은 김가항성당을 본뜬 김대건 기념관을 건립하고 잔디광장과 함께 십자가의 길, 성모 동산을 조성했다. 정래수 기자 raesu1971@dy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