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기사

[전례·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 (5) 이 시대에 평화를

procurator 0 1,405 02.13 14:38

주님 간절히 비오니 평화를 주소서


전쟁 앞에 무력한 우리들
침묵하기보다는 노래하길
‘참 평화’ 기도로 힘 모으길


2018년 10월 3일 독일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에서 열린 레겐스부르크 소년합창단 연주회.


“Verleih uns Frieden gnädiglich, Herr Gott, zu unsern Zeiten! Es ist doch ja kein Andrer nicht, der für uns könnte streiten, denn du, unser Gott alleine.”
(주 하느님, 이 시대에 저희에게 자애로이 평화를 베풀어 주소서. 저희 (평화)를 위하여 싸워주실 분은 당신 밖에는 아무도 없사오니, 당신 홀로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2018년 가을, 독일에서 졸업시험을 모두 마치고 레겐스부르크 기숙사에서 방을 뺄 준비를 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의 오르가니스트인 도미니쿠스 트라우트너 신부는 매년 가을에 독일의 유명한 합창단이나 연주 단체를 불러 수도원에서 큰 연주회를 여는데, 마침 그해에는 레겐스부르크 소년합창단(Regensburger Domspatzen)이 와서 연주하게 되었습니다.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은 제가 방학 때면 머무르는 곳이어서 도미니쿠스 신부가 저를 초대해 주기도 했고, 함께 공부했던 친구 중 레겐스부르크 소년합창단 출신도 많아 그 덕에 소년합창단 아이들과 안면이 있기도 해서 함께 수도원으로 향했습니다. 이 공연은 레겐스부르크 소년합창단 지휘자이자 카펠마이스터였던 롤란드 뷔히너가 은퇴를 앞두고 하는 마지막 공연의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이날 공연의 핵심은 콘체르토 쾰른(Concerto Köln) 연주 단체와 함께한 펠릭스 멘델스존-바르톨디(Felix Mendelssohn-Bartholdy)의 교향-칸타타 ‘찬양의 노래’(Lobgesang)였습니다. 그 큰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 성당은 서 있을 자리조차 없을 정도로 가득 찼고 연주도 아주 훌륭했습니다. 모든 공연을 마치고 박수가 계속 이어지자, 뷔히너는 공연 곡의 하나였던 멘델스존의 ‘평화를 주소서’(Verleih uns Frieden)를 앙코르곡으로 한번 더 연주했습니다.

앙코르를 마친 다음의 반응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뷔히너는 마지막 음표를 마친 자세 그대로 몇 분간을 멈추었습니다. 곡이 멈추고 난 후의 몇 초도 아니고 몇 분은 상당히 긴 시간인데, 그동안 모든 관객은 숨을 죽였고 심지어 기자들도 그 큰 카메라를 들고서 플래시를 터트리려는 상태 그대로 멈춰있었습니다. 뷔히너는 그러곤 멈춘 자세를 풀면서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습니다. 그간 지휘자로 살아온 삶에 감사해서였는지, 모두가 평화의 노래에 함께 깊은 침묵으로 동참한 데 대해 감동을 받아서였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저는 그분이 만든 삶의 음악과 평화의 침묵 모두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마침 이날은, 10월 3일. 독일 통일의 날이었습니다.

본래라면 이번 글은 한국에 무사히 들어가 자가격리를 하면서 사순 시기와 관련된 이야기를 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전쟁이 벌어졌고, 러시아나 우크라이나를 지나가는 하늘 길이 모두 막혀 암스테르담과 파리에서 하루씩 묶이게 됐습니다. 2박 3일이 지체돼 이제야 간신히 루마니아, 흑해를 거쳐 투르크메니스탄 위 1만 미터 상공을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쓰고 있습니다.

그래도 전쟁의 여파로 간접적인 피해를 보는 저희야 어쨌든 조금만 수고를 하면 되는데, 진짜 고통당하는 우크라이나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자니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이 시대에 저런 전쟁이라니요. 특히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이 평생 살아가면서 겪을 공포와 고통은 어떻게 책임져야 할까요. 여성, 노약자들이 겪을 피해는 어떻게 책임져야 할까요.

여러 매체를 통해 음악가들 소식을 듣습니다. 한 교회음악가 친구는 성당에 설치된 카리옹으로, 또 다른 친구는 오르간으로 우크라이나 국가를 연주하기도 합니다. 그밖에 많은 음악가들이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방식으로 평화를 노래합니다. 그 가운데 두 곡이 특히 눈에 띕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앞서 말씀드린 멘델스존의 노래입니다.
저는 특히나 합창음악 작곡가로 멘델스존을 정말 좋아하는데요, 합창을 해 보신 분들이라면 멘델스존이 얼마나 천재적인 작곡가인지 인정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어느 성부를 노래하든 멘델스존의 음악은 아름답습니다. 주제 멜로디는 처음에 베이스 혼자 부릅니다. 평화를 갈망하는 이 주제를 알토가 받을 때, 베이스는 이 갈망하는 마음을 반복하기도 하고, 그 마음에 대답하기도 하면서 더 간절하게 노래합니다.

마지막으로 소프라노가 주제를 부를 때 모두가 다 함께 부르는 합창은 우리를 평화 자체로 더 높이, 더 깊이 들어갈 수 있게 이끌어줍니다. 이 노래는 다른 언어 버전도 있지만, 특히나 독일어로 아름답게 표현합니다. 기본 멜로디만 놓고 봐도 ‘평화’(Frieden), ‘자애로이’(gnädiglich), ‘하느님’(Gott), ‘시대에’(Zeiten), ‘싸워주실’(streiten), 다시 한번 ‘하느님’(Gott), ‘홀로’(alleine)라는 발음이 아주 자연스럽게 강세는 길어지고 약한 부분은 흩어지듯 끝나게끔 작곡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필립 헤레베헤(Philippe Herreweghe) 지휘, 콜레기움 보칼레 헨트(Collegium Vocale Gent)가 노래한 아르모니아 문디(harmonia mundi) 음반사의 합창을 좋아합니다. 인터넷을 통해서도 찾아 들어보실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에스토니아 출신으로 구소련 치하에서 압박을 받다가 망명해 지금은 독일 베를린에 사는 아르보 패르트(Arvo Päart)의 ‘주님, 평화를 주소서’(Da pacem Domine)입니다. 이 노래 가사는 앞서 말씀드린 Verleih uns Frieden 가사와 같은 내용입니다. 아니, 원래 내용이라고 해야겠죠. 그레고리오 성가의 가사니까요. 아무튼 이 노래는 2004년 마드리드 열차 테러 사고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스페인 카탈루냐의 유명한 고음악 연주자이자 지휘자인 조르디 사발(Jordi Savall)이 아르보 패르트에게 의뢰한 작품입니다.

이 노래에서는 멘델스존 노래에서처럼 합창단원들이 가사의 단어를 제대로 발음하는 게 아니라, 모든 성부가 한 음절 한 음절 느릿하게 이어질 듯 끊어질 듯 반향하면서 부릅니다. 마치 죽은 이를 위해 가장 깊은 조종을 울리듯이 말입니다. 여기에서는 알토가 그레고리오 성가의 멜로디를 부르고, 중간중간 르네상스 음악처럼 마무리를 짓습니다. 폴 힐리어(Paul Hillier)가 지휘하는 노래는 아르보 패르트의 고요하고 깊은 종교심을 잘 드러내고, 조르디 사발이 지휘하는 노래는 폭력과 전쟁의 비극을 강렬하게 잘 드러냅니다. 모두 유튜브에서 찾아 들으실 수 있습니다.

“Da pacem Domine, in diebus nostris: quia non est alius qui pugnet pro nobis, nisi tu Deus noster.”
이 노래를 함께 들으면서 지금 이 시대에 하느님께서 평화를 주시기를 함께 기도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