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를 향해 끝없이 나아가는… 순례같은 인생 여정이여
올 한 해 동안 참 이리저리 많이도 다녔습니다. 이번 주에만 해도 쿠바에서 독일을 거쳐 다시 스페인으로 와 이 글을 쓰고 있으니, 정주를 사랑하는 저희 베네딕도회원들이 그토록 꺼리는 떠돌이 수도승이 된 느낌입니다. 사실 본래 떠돌이 수도승은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 때문에 고향마저 포기하고 수행 생활을 하던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베네딕토 성인 시대에는 어떤 공동체에도 속하지 않고 어떤 책임도 지지 않으려고 이 공동체, 저 공동체에서 손님 대접만 받고 훌쩍 떠돌아다니던 이들로 변질합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예전에 유학하면서 큰 신세를 졌던 독일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 형제들한테 큰 환대를 받고, 우리 연합회의 모원인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푹 쉬고서는 석 달간 함께 지내면서 정이 많이 들었던 스페인 라바날 수도원으로 와 이것저것 많이 대접받으면서, ‘당시 떠돌이 수도승들이 이런 순수한 환대를 이용해 먹으려면 얼마든지 이용해 먹을 수 있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오랜만에 독일을 찾아 반갑다는 마음이 드는 동시에, 사실 겨우 4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돌아가신 분들이나 떠나간 형제들에 대한 소식을 직접 듣고 확인하니 서운하고 아쉬운 마음도 많이 듭니다. 이번에 공항으로 저를 마중 나온 수사님은 저보고 ‘흰 수염이 많이 났다’고 놀리는데, 그렇게 놀리는 자기 머리도 이미 백발이 된 건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서로 한참을 웃었습니다. 지난 연재분에서 짧게 언급하고 지나간 라바누스 신부님, 아니 라바누스 할아버지는 직접 뵙고 나니 너무 슬펐습니다.
음악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계시고, 실제로 이제 다른 나라에서는 거의 사멸하다시피 한 그레고리오 성가를 독일에 정착시키는 데 한몫을 한 라바누스 에어바허 신부님(P. Rhabanus Erbacher OSB)은 몸 한쪽이 마비되어 휠체어에 앉아 저와 말씀도 제대로 나누지 못해 답답해 하셨습니다.
신부님은 그레고리오 성가 기호학의 대가인 프랑스 솔렘 수도원의 외젠 카르딘 신부님과 함께 작업을 하셨고,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의 고데하르트 요피히와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의 요한네스 베르히만스 괴슐이 각각 수도 생활과 성직에서 떠날 때 묵묵히 자리를 지켜 끝내 베네딕도회 시편 집을 만들어낸 분이십니다.
당시 독일 쾰른대교구 추기경이 베네딕도회가 시편집을 따로 만들어내는 것을 지적할 때에도 로핑크 형제나 노트커 퓌글리스터 같은 많은 성서학자와 전례학자의 지원을 받아 문학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아름다운 번역본을 만들어내고, 이제는 그 유려한 번역 때문에 오히려 많은 수도회와 일부 교구에서 베네딕도회 시편집을 더 사용하게끔 하는 데 큰 역할을 하신 분이기도 합니다. 오르가니스트로 그레고리오 성가 즉흥도 참 잘하셨는데, 한밤중에 신부님 방 앞을 지나가면 매캐한 담배 냄새와 더불어 재즈 연주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제 전임자이신 엘마르 신부님과 어려서부터 단짝이라, 엘마르 신부님이 노래를 부르면 라바누스 신부님이 늘 피아노 연주를 하셨습니다.
이번에 신부님 소식을 전혀 모른 상태에서 쿠바산 시가를 선물로 가져갔는데, 신부님께 선물로 시가를 드리며 함께 엘마르 신부님을 추억하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해 참 슬펐습니다. 그래도 신부님의 음악은 제 기억 속에 남아있으니, 언젠가는 그분의 정신을 다른 분들과 나눠야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그러고 보니 그사이 참 아름다운 죽음을 전설같이 남긴 수사님도 계셨습니다. 키가 작고 늘 미소를 짓던 할아버지 수사님, 게레온 피스터 수사님(Br. Gereon Pfister OSB)이 계셨는데, 저를 전혀 편견 없이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의 한 형제로 여겨주시던 분이었습니다. 너무나 착하신데, 하고 싶으신 게 많으셔서 시도 짓고 바이올린도 켜시고 하셨지만, 형제들의 인정은 잘 받지 못한 분이셨습니다.
그분을 떠올리면 잠이 많으셔서 늘 어딘가에 앉아 꾸벅꾸벅 조셨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게레온 수사님은 날이 막 따뜻해지는 2019년 4월의 어느 토요일 오후, 늘 그렇듯이 보행기를 끌고 수도원 정원을 한 바퀴 돈 뒤에, 방에 가져다 꽂아놓을 들풀 몇 가닥을 꺾어 무릎 위에 올려놓고 햇빛이 잘 드는 벤치에 앉아 마치 잠을 자듯이 돌아가셨습니다. 그곳을 지나다니던 많은 형제는 수사님이 벤치에서 졸고 계시는 거려니 여겼다고 합니다.
변함없을 것 같던 분들의 소식을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들으니, 식상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우리네 인생은 어디 한곳에 그냥 머물러 있지 않고 어딘가로 향해 나아가는 순례라는 말에 공감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통적인 여덟 개의 교회선법 다음에 오는 선법이라고 해서 제9선법이라고도 하는 ‘순례자 선법’(Tonus peregrinus)이 떠오릅니다. 지난 한 주의 피로를 풀기는 했어도 월요일을 맞이한다는 부담감이 가슴 한편에 자리해 어둑어둑해지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조금 우울해지기도 하는 주일 저녁에 부르는 시편 114(113)편과 어우러지면서 우리 삶이 마냥 기쁨도 아니고 마냥 슬픔도 아닌, 왔다 갔다 하는 여정 가운데 중심을 찾아 나서는 삶임을 가르쳐줍니다.
마침 시편 내용도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 / 야곱 집안이 이민족에게서 떠나올 때”(*결국 출간을 못 했지만, 우리 베네딕도회에서 작업한 시편 번역본입니다)라고 시작하면서 우리 삶의 순례 여정을 알려줍니다.
이 선법은 다른 선법과 다르게 테너(Tenor)라고도 하는 시편 낭송음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음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전반부의 테너가 ‘라’라면, 후반부의 테너가 ‘솔’로 이동하게 됩니다.
그래서 12개 선법을 이야기한 글라레아누스(Glareanus)의 이론을 따르는 음악학자들은 이 선법을 도리안 선법이나 에올리안 선법에 편입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순례자 선법의 시편 낭송은 도입하는 장식음 없이 바로 테너 ‘라’로 시작하기도 하는데, 독일 지역에서는 시대나 장소에 따라 조금씩 차이를 보이기는 하지만 장식음들로 이 선법을 시작합니다. 이 장식음이 포함된 순례자 선법은 특히 루터교에서 마니피캇(Magnificat)을 위한 선법으로 사용되면서 많은 사랑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바흐도 마니피캇과 관련된 곡에 세 차례나 순례자 선법을 사용합니다.
모차르트 역시 순례자 선법을 사용합니다. 바로 그의 마지막 작품 ‘레퀴엠’(Requiem)의 첫 곡, 입당송(Introitus) 후렴구에 오는 시편 65(64)편에 말입니다. 이때 소프라노는 독일식 장식음이 가미된 순례자 선법을 노래합니다. “Te decet hymnus, Deus, in Sion / et tibi reddetur votum in Jerusalem”(하느님, 시온에서 당신께 드리는 찬미 노래가 마땅하오며, 예루살렘에서 당신께 서원이 바쳐지리이다).
마침 여덟 개의 교회선법이 끝나는 자리에 새롭게 덧붙여져 오랫동안 사랑을 받은 아홉 번째 선법, 순례자 선법을 가장 깊게 연구하신 분은 라바누스 신부님이십니다. 신부님이 다시 건강해지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