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복음화’ 의지 담아
북녘 향한 보편교회의 지속적 배려
춘천교구에 함경도 일대 사목 맡겨
함흥교구장과 덕원자치수도원구 자치구장 서리 임명은 반세기가 넘게 침묵 속에 놓여있는 북녘 땅을 향한 보편교회의 특별하고도 지속적인 배려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교황 바오로 6세가 지난 1976년 10월 23일부 자의교서 ‘Catholica Ecclesia’를 통해 특별한 경우 외에는 자치 수도원구 신설을 불허하며, 역사적 중요성을 갖는 약간의 자치 수도원구를 제외하고는 현존하는 것도 폐지할 것을 선언한데서도 살필 수 있다. 그러므로 덕원자치수도원구를 존속시키며 사목 책임자를 임명한 것은 한국교회가 향후 북한 복음화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며 적극적인 몫을 찾아나가길 바라는 원의를 담고 있다고 하겠다.
연혁
함흥교구와 덕원자치수도원구는 1940년 1월 12일 원산대목구가 나눠질 때 각각 함흥대목구와 덕원면속구라는 이름으로 탄생했다. 이전에 원산교구가 관할하던 지역 중 안변 덕원 문천 고원의 4개 지구를 덕원자치구가 관할하고 이를 제외한 함경남북도 일원을 함흥교구가 맡아 사목을 펼쳐왔다.
당시 함흥교구만 하더라도 6739명의 신자에 세례 지원자 548명, 사제 14명, 본당 59개, 소학교 5개교, 의료시설 2개소 등 적잖은 교세를 지니고 있었다. 교구 설정 뒤 덕원자치구 사우어 주교 관할 하에 있다 해방을 맞았으나 북한에 사회주의정권이 들어서면서 오늘날까지 침묵의 교회로 남아왔다.
덕원자치구는 원산을 포함하여 4개 본당으로 구성돼 덕원수도원 주변에 위치해 있었으므로 집중적으로 사목할 수가 있어 급속한 성장을 이뤄냈다. 아울러 공장을 비롯, 병원 인쇄소 등의 경영을 통해 교구 발전의 초석을 마련했을 뿐 아니라 타 교구에도 적잖은 도움을 줘 한국교회 발전에 기여했다.
1945년 독립과 더불어 한반도 북쪽이 북한정권의 지배 아래 들어가자 수도원은 1945년 5월 9일 몰수당하고 사우어 주교를 비롯한 많은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감금당하거나 사망하는 시련을 겪었다.
의의와 전망
접경교구이자 분단교구인 춘천교구는 북한이 식량난으로 허덕이던 1997년부터 ‘한솥밥 한식구’ 운동을 전개하는 등 대북지원사업을 펼치기 시작한 것을 시발로 민족화해를 위해 남다른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왔다. 특히 남북적십자사가 합의한 지정기탁제를 활용해 교회 내에서는 처음으로 북한 북강원도 지역을 지원하는 등 민족화해의 길을 넓혀오고 있다.
따라서 이번 교령은 춘천교구에 북한 동부지역인 함경도 일대에 대한 사목적 책임을 맡긴 것이라 할 수 있어 향후 그간 다져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더욱 다양하고 실질적인 사목적 접근이 가능해지리라는 전망을 낳는다.
덕원자치구의 경우 자치구장은 다소의 제한이 있으나 교구장 주교가 본교구에서 갖는 동일한 권한과 의무를 갖는다. 이번 교령은 자치구 설립 이전부터 함경남북도와 만주 북간도 지방에서 포교사업을 벌여온 성 베네딕도회 독일 오딜리아연합회의 선교사들의 역사를 인정하며 이 전통을 이어받은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에 북한 복음화를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당부한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서상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