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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한담] 성모님이 잡아 주신 붓 / 심순화 (가톨릭 신문, 2023-03-05 [제3333호, 22면])

procurator 0 1,174 02.2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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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추위에 움츠렸다가 따스한 봄이 오면 꽃을 활짝 피우는 매화꽃이나 벚꽃을 보면 나 자신도 꽃을 피우듯 설렘으로 가득차서 환한 매화꽃을 그리고 싶어집니다. 꽃피는 4월이 되면 생각나는 기억이 있습니다. 2016년 4월 중순쯤 어느 성지에서 벽면 작업을 하고 내려오다 그만 의자에서 떨어졌습니다.

오른손으로 시멘트 바닥을 짚는 바람에 손목이 부러져 어긋나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큰 병원 응급실에 가서 뼈를 맞추고 깁스를 한 다음 일주일 후 수술을 했습니다. 하루아침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손이 되었다는 사실에 육체적으로 느끼는 통증보다 마음이 너무 아팠기에,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했습니다.

못을 다섯 개나 박았기에 손목 통증이 너무 심했습니다. 통증은 팔을 타고 올라와 온몸으로 전해졌습니다. 모르핀을 나흘 동안 맞으며 통증과 싸워야 했습니다. 견디기 힘들 때마다 병원 15층에 있는 성당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성당 안에는 손목에서 피를 흘리는 고통의 예수님상이 있었습니다. 내가 아프니까 예수님의 피 흘리는 상처가 보이고 더욱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성당 입구에는 ‘아이야 일어나라’라는 제목의 성화가 걸려 있었는데, “나도 치유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성화 속에 예수님이 서 계신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수술 한 달만에 손목에 박은 못 다섯 개를 빼내고 재활을 시작했습니다. 고목처럼 검게 변해 버린 손이 크게 부풀어 올라 손금도, 손가락 마디 주름도 없어진 상태였습니다. 그 손을 보며 예수님의 못 박힌 손을 상상했고, 그래서 한동안 십자가 위 예수님의 못 박힌 손을 검게 변한 고통스러운 손으로 그리기도 했습니다.

재활치료는 더욱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러나 그림을 다시 그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재활에 전념하면서, “내 손이 부러진 연필이 되었으니 성모님께서 내 손을 잡아달라”고 왼손으로 묵주알을 굴렸습니다.

그때 무겁게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었는데,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서 의뢰한 성화 제작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2016년 10월 1일에 모원인 독일 성 베네딕도회 뮌스터슈바르작수도원 설립 1200주년 행사 때 전달할 작품이었습니다.

1월에 연락을 받고 원하시는 모습의 성모님 성화를 스케치해둔 상태였는데, 그만 사고를 당한 것이었습니다.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돼 마음이 너무나 고통스러웠고, 담당 신부님께는 “사고를 당해서 그릴 수 없게 됐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재활 치료사가 ‘연필 잡는 것도 재활’이라고 하신 말에 갑자기 한 줄기 빛처럼 희망이라는 빛이 번쩍거렸습니다.

뻣뻣한 나무 같은 손가락에 붓을 올려놓고 성모님께 도움을 청하면서 물감을 칠해 보았습니다. 손가락과 손목은 거의 움직이지 못하고, 붓만 약간 꺾인 손가락에 올려놓고 팔을 이용해 움직여 보았더니 신기하게도 예전의 힘이 붓에서 나왔습니다

통증으로 힘이 들었지만 그렇게 재활 과정을 통해 세로 160㎝ 가로 130㎝의 성모님 성화를 완성했고, 9월 초 뮌스터슈바르작수도원에 선물로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그 성화를 위해 붓을 들며 “만약 이 성화가 완성된다면 내가 그린 것이 아니고 성모님께서 도와주신 것”이라고 누군가에게 말한 적 있는데, ‘성모님께서 붓을 잡아 주셨기에 할 수 있었다’는 것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평화의 모후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심순화 가타리나(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