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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도푸드] ‘벨기에 수도원 맥주? 한국은 수녀원 메주!’ 영성으로 만드는 음식 (경향신문, 2023-03-10)

procurator 0 2,460 02.26 10:02

수도원 부어스트(소시지)와 유기농 과일 잼, 수녀원 메주와 된장과 돈까스도 입소문 자자

배 농사 짓는 수도원의 배즙, ‘피부의 수도자’ 맘카페가 인정한 수도원 화장품까지 다양

벨기에 성 식스투스 수도원의 맥주, 프랑스 시토 수도원의 치즈, 이탈리아 카말톨리 수도원 화장품 등은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제품들이다. 뛰어난 품질로 신뢰를 얻고 있는 이 제품들의 공통점은 수도원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기도와 노동, 성독(聖讀)이라는 수도 생활의 3대 축에서 노동은 자급과 자립을 위한 일환이다. 영리와는 상관없는, 경건한 의무로 만들어지는 결과물이다. 서양 문명의 주요 축인 기독교 문화를 지탱해 온 수도원들은 정신적인 부분에서뿐 아니라 치즈, 와인, 맥주 등 서양 음식문화의 명맥을 유지하는데도 큰 기여를 해왔다. 기업인이자 작가인 어거스트 투랙은 저서 <수도원에 간 CEO>에서 1000년 넘게 명성을 얻고 있는 수도원 제품에 대해 “품질에 신경 쓰는 것을 제외하고는 기본적인 사업 규칙들을 모조리 무시한다”고 썼다. 양이 아닌 질, 이윤이 아닌 사명을 추구하는 데 오랜 명성의 비밀이 있다는 것이다.

서양 식문화에서 수도원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

서양 식문화에서 수도원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

국내에도 수도원 등 수도 공동체에서 생산된, 품질로 입소문 난 제품들이 있다.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상당 기간 탄탄한 마니아층을 형성해 오고 있다. 이윤을 추구하는 상업적 생산 시설이 아니다 보니 생산 규모에는 한계가 있다. 취재과정에서 “관심은 감사하나 수요가 많다고 생산량을 늘릴 수 없으니 부담스럽기도 하다”는 우려도 들어야 했다.

경북 왜관에 있는 성 베네딕도회 분도푸드는 부어스트(소시지)를 만든다. 독일 정통 방식을 고수해 만드는 이 소시지는 당일 도축한 국산 돼지고기를 사용하며 전분이나 대두단백이 들어가지 않는다. 소금을 제외한 향신료를 비롯해 포장지까지 독일 수도원에서 사용하는 재료를 공수해 쓴다. 수도원에서 소시지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다. 수도원 내에 ‘순대방’을 만들고 독일 베네딕도회에서 파견된 수도자들이 독일에서 즐겨 먹던 소시지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그 시초다. 지금도 수도원 내에서는 이 소시지를 순대라고 부른다. 초창기에는 수도원 내부에서 먹기 위한 것이었지만 이웃에 선물하거나 나누면서 맛있다는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신자들의 요청이 꾸준히 이어지면서 2011년 ‘분도식품’으로 정식 등록을 했다. 2019년에는 분도푸드로 이름을 바꾸고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HACCP)에 따라 생산할 수 있는 첨단 시설을 재정비했다.

생산을 총괄하는 강알빈 수사를 비롯해 이곳의 수사들은 독일 뮌스터 슈바르작 수도원,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유학하면서 소시지 만드는 기술을 익혔다. 현재도 뮌스터 슈바르작 수도원에 한 명의 수사가 유학하고 있다. 생산 제품은 겔브부어스트, 마늘부어스트, 바이스부어스트, 그릴부어스트 등 모두 4종이다. 겔브(Gelb)는 노란색 혹은 황색을 뜻하는 말로 부드러운 식감을 자랑하는 소시지다. 포장지 색상에서 이름이 유래되었으며 익혀진 제품이라 바로 섭취가 가능하다. 마늘부어스트는 한국인의 입맛에 맞도록 마늘과 양념을 버무린 돼지고기로 만들었다. 바이스부어스트는 뮌헨 지역의 대표적인 소시지로 돼지고기를 파슬리와 함께 천연 돈장(돼지 창자)에 넣어 만든 제품이다. 끓인 물에 7~10분 정도 데운 후 먹는 것이 맛있다. 그릴부어스트는 이름 그대로 그릴에 구워 먹는 소시지다. 서울 명동성당 옆 가톨릭회관 분도출판사 매장과 분도푸드 홈페이지(https://bundofood.com/shop/)를 통해 구입할 수 있다.

트라피스트 수녀원 유기농 잼.             트라피스트 수녀원 제공

트라피스트 수녀원 유기농 잼. 트라피스트 수녀원 제공

포털사이트에서 ‘수녀원 잼’으로 검색하면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제품도 있다. 엄률 시토회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여자 수도원에서 만드는 유기농 과일 잼이다. 경남 창원에 있는 이 수도원에서는 1997년부터 잼을 만들기 시작했다. 초창기에는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작은 냄비나 프라이팬을 이용해 만드는 방식이었던 터라 8명의 수녀들이 하루종일 매달려도 200병 정도 만드는 데 그쳐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2006년에야 로마 본부와 여러 수도원의 도움으로 대규모 생산이 가능한 자동화 설비를 갖췄다.

이곳에서 만드는 제품은 딸기, 포도, 무화과, 귤로 만든 잼으로 유기농 과일과 유기농 설탕만으로 제조한다. 첨가물은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생산을 책임지는 김 그라치아 수녀는 “먹거리 안전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눈으로 직접 보게 되면서 철저한 품질과 위생관리를 하고 있다”면서 “첨가물을 사용하지 않고 제품을 대량 생산한다는 것이 어렵지만 그동안 지켜온 맛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수도원에서는 고령과 논산, 홍성의 딸기 농가를 비롯해 영동(포도), 함평(무화과), 제주(귤) 농가를 1년에도 몇 차례씩 방문해 재배 및 처리 과정을 점검한다. 제품은 수도원 직영몰(https://smartstore.naver.com/trappistshop)에서 살 수 있다.

대구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가 운영하는 백합식품은 메주와 된장을 만들어 판매한다. 대구 일대에서는 ‘수녀원 메주’로 유명하다. 수녀원 내에 보육 시설을 운영하면서 이를 지원하는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하게 됐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제품은 메주와 된장, 쌈장, 고추장, 간장 등 장류, 메줏가루와 청국장 등으로, 엄선된 국내산 콩만을 사용해 만든다. 메주는 개량된 형태로 색다른 모양을 갖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일반적인 메주는 큰 덩어리 형태이나 백합식품 메주는 우동 면발같은 메주가 주먹만 한 덩어리로 뭉쳐져 있다. 발효가 잘되어 장맛이 좋고 장을 담기도 편리하다는 것이 소비자들의 반응이다. 올해 처음으로 장 담그기를 시도했다는 직장인 유은경씨는 “대구가 외가라 어릴 때부터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이 수녀원에서 사온 메주로 담근 장을 먹었지만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로는 몇 년간 못 먹었다”면서 “군내나 잡내도 없고 만드는 것도 생각만큼 어렵지 않았다”고 말했다. 제품은 인터넷 홈페이지(www.spcfood.co.kr)를 통해 구입할 수 있다. 판매에 따른 수익금은 수녀원 산하 여러 복지시설을 지원하는 데 사용된다.

백합식품  홈페이지

백합식품 홈페이지

경기 남양주의 성 베네딕도회 요셉 수도원(www.benedict.kr)에는 배밭이 있어 수사들이 배 농사를 짓는다. 매년 10월에 배를 수확해 만드는 배즙으로 유명하다. 배즙 외에 야콘즙, 매실, 종합효소 등을 찾는 소비자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