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말씀 쉽게 노래하면서 우리말과도 잘 어울리는 곡
요즈음 본의 아니게 본당 신부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같은 건물을 사용하고 있는 본당 신부가 멕시코로 한 달간 연수를 떠나면서 본당에 딸린 두 경당 미사를 부탁했는데, 얼마 전 “모처럼 나온 김에 돌아다니면서 모금 좀 하고 돌아온다”고 두 달 정도를 더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이대로 본당 미사 없이 경당 미사만 하기에는 하염없이 신부를 기다리는 신자분들께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어, 이번 주부터 저는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두 경당으로 걸어서 미사를 주례하러 다니고, 이제 막 선교사로 입국한 우리 연합회 필리핀 신부님 한 분이 아직 스페인어 미사 경본을 띄엄띄엄 읽기는 하지만 본당 미사를 주례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이 성당이 스페인 식민 시절, 성벽 바깥의 첫 성당인데다 스페인 통치에 반란을 일으킨 노예들이 공개 처형을 당한 상징적인 곳입니다. 지금은 몹시 가난한 이들이 사는 동네이지만 몇 년 전만 해도 본래 꽤 활기를 띠던 곳인데, 연로하신 본당 신부가 돌아가시고 이후 사이클론까지 본당을 휩쓸고 지나간 후로 많은 신자분들이 다른 곳으로 떠나가 안타깝습니다.
아무튼 그래도 이 본당과 경당을 여전히 지키는 분들이 꽤 계시는데, 이분들은 성가책도 없이 몇 절이나 되는 노래들을 어떻게 그렇게 힘차게 외워 부르는지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같이 긴 노래를 줄줄 외워 부르는데, 확실히 칸토르(선창자)를 맡으신 분들이 신자분들이 따라 부를 수 있도록 큰 목소리로 이끌어 가시면서 전례 안에서 정말 큰 역할을 하는 덕분인 것 같습니다.
그밖에 선율이 참 쉽습니다. 몇 번 들으면 아직 가사를 모르는 저도 대충 따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선율이 그냥 쉽고 단조롭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노래가 스페인어를 말로 할 때의 억양이나 음조, 리듬과 그대로 잘 어우러지는데다가 선율 자체도 맘에 쏙 들어, 미사가 끝나고 나서도 그냥 그 선율을 흥얼거리기도 합니다. 때로는 독일에서 부르던 독일 성가를 스페인어로 불러 반갑기도 한데, 그렇다고 그걸 그대로 옮기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언어에 맞추어 손을 봤다고 할까요.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교회음악 역사가 어떻게 되는지는 전혀 모릅니다. 조금 오래된 성가인 경우, 스페인에서 사용하던 성가를 가져왔을 거고, 나중에는 자체적으로 노래들이 생겨났겠지요. 그래도 자기네 말과 잘 어우러진 성가들을 듣고, 또 함께 불러보니 이게 또 참 부럽긴 합니다. 설사 이미 다른 나라의 성가를 가져오더라도 선율을 그대로 사용하고 거기에 억지로 말을 집어넣은 게 아니라, 하느님을 찬미하는 우리 표현에 맞추어 선율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했으니까요.
이런 전통은 특히 독일과 프랑스에서 많이 느꼈습니다. 아예 성가 가사를 하나의 시(詩)로 새로 지으면서 그에 맞추어 노래로 만드는 독일 성가 전통과, 시편을 아름답고 유려한 노랫말로 번역하면서 그에 맞추어 노래를 만드는 프랑스 시편성가 전통이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서로 섞인 것이지요. 나아가 개신교와 가톨릭 할 것 없이 결국에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발전한 역사가 나중에 성가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고민거리와 기준점을 제시한 게 아닌가 합니다.
그중에 프랑스어를 사용하던 지역의 시편 성가 발전 과정이 참 재미있습니다. 먼저 프랑스어권 지역이던 제네바에서는 장 칼뱅(Jean Cavin)의 주도로 시편 음악이 발전하게 됩니다. 마르틴 루터는 신학적인 가르침을 시로 만들어, 그 시를 노래로 만들곤 했는데, 칼뱅은 우리가 새로 인간적인 시를 짓는 게 아니라 시편처럼 하느님의 본래 말씀을 직접 번역하고 다듬는 데 한해서만 단성성가로 만들어도 좋다는 의견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칼뱅 자신이 프랑스 문학사에서 위대한 근대 시인으로 평가되는 클레망 마로(Clément Marot)와 함께 시편을 노랫말로 다듬기 시작했고, 각 시편을 여러 연으로 나누어 가사를 만들었습니다. 거기에 루이 부르주아(Louis Bourgeois), 기욤 프랑(Guillaume Franc), 피에르 다그(Pierre Dagues)가 선율을 붙였는데, 1562년에 모든 시편 150편에다 시므온의 노래(Nunc dimittis), 십계명 노래가 덧붙여져 위그노 시편집이라고도 불리는 제네바 시편 성가집(Psautier de Genève)이 최종적으로 완성됩니다.
이 시편 성가의 특징을 지금 우리의 성가들이 그대로 이어받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음절 하나에 한 개의 음이 붙고, 우리의 언어가 원래 가지고 있는 리듬과 선율이 그대로 음악이 되었으며, 한 개의 시편을 여러 개 연으로 나누어 놓아 신자들이 같은 멜로디를 여러 절로 나누어 쉽게 따라 부르게 만들었습니다. 당연히 멜로디는 대개 한 옥타브 안에서 어렵지 않게 만들어져야 했습니다.
신자들이 반주 없이 단성성가로 부르기 위해 시편 성가를 만들었던 칼뱅의 뜻은 2년도 지나지 않아 지켜지지 않게 됩니다. 음악가들의 실험정신이 어디 가겠습니까. 클로드 구디멜(Claude Goudimel)이 1564년에 제네바 시편집 노래들을 4성부 곡으로 만들어 출간합니다. 이 곡들은 독일의 암브로시우스 롭바써(Ambrosius Lobwasser)가 독일어로 번역 편찬하면서 독일의 루터 성가 전통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되고, 르네상스 후기에 칸티오날(Kantional)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킵니다. 칸티오날은 르네상스 후기와 바로크 초기를 거치면서 한스 레오 하슬러(Hans Leo Haßler), 헤르만 샤인(Hermann Schein)이 주로 다루게 됩니다. 본래 구디멜의 칸티오날은 성가 멜로디가 테너에 있었지만, 점차 디스칸트(소프라노)로 옮겨오면서 지금의 우리가 성가곡을 4성부로 만들었을 때와 비슷한 형태를 이루게 됩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어릴 때 할머니께서 매일 불러주시던 가톨릭성가 54번 노래입니다.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대구수녀원의 구명림 수녀님께서 작곡하신 곡으로, 개인적으론 이 성가만큼 모든 신자분들이 쉽게 부를 수 있고, 그러면서 우리말과 참 자연스럽게 잘 어울리는 성가는 없는 것 같습니다.
종교개혁 시대를 전후로 해서 지금까지 가톨릭과 개신교 할 것 없이 어떻게 하면 모든 신자가 한마음, 한목소리로 하느님 말씀을 쉽게 노래하고 또 그 말씀을 내면화할까 고민하면서 알게 모르게 만들어왔던 좋은 성가들 가운데 한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악가만을 위한 성가가 아니라 정말 보통의 우리를 위한 성가 같거든요. 게다가 제가 좋아하는 시편이고요. 물론 어렸을 때 늘 할머니께서 불러주신 추억의 영향도 크겠지요. 여러분은 어떤 성가를 좋아하시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