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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 (17) 음악의 지지대 – 베이스

procurator 0 1,946 02.13 15:16

몸을 지지해주는 발처럼, 음악이 나아갈 수 있도록 ‘기초’ 잡아줘


곡의 화음에 가장 기본적 역할
성가 합창곡에서 중요성 더욱 부각
바로크 시대, 악보에 베이스 음 기록


독일 레겐스부르크 교회음악대학 고음악 연습실의 게네랄바스 건반악기들.


정신없이 보낸 한 주가 지나갔습니다. 이곳에서 하루하루 큰 변화 없이 살아가는 저희한테 손님이 찾아온다는 건 정말 큰 행사나 다름없는데요, 무려 독일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연합회 총재 예레미야스 아빠스와 연합회 선교 담당 총무 하비에르 신부가 약 한 주간 우리 공동체를 방문했습니다. 초콜릿이나 쿠키, 참치 캔같이 이곳에서는 구하기 힘든 먹거리도 두 개의 여행 가방에 꽉꽉 채워왔고, 덕분에 모처럼 배부르게 식사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중간에는 아바나 시내도 함께 구경을 갔는데, 저도 쿠바에 도착한 지 석 달 만에 거의 처음으로 시내를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예레미야스 아빠스는 제가 아직도 시내 구경을 제대로 못해봤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는데요, 이제 와서 말씀드리지만 사실 제가 쿠바에 도착하고 한 달 가량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엄지발가락 쪽 인대에 이상이 생겨 발이 끊어질 듯 아파서 두 주 정도는 누워 있었고, 다 나은 지금도 엄지발가락 쪽에 힘이 잘 안 들어가고 오래 걸으면 조금 당기듯이 아픈 걸 보면 인대에 문제가 생긴 것도 같습니다.

아무튼 그래서 아직 오래 걷는 건 조금 걱정이긴 했는데, 두 분과 함께 시내까지 걸어가 보았고, 한 시간 정도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다행히 잘 다녀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나를 걸을 수 있게 해 주는 발, 내 몸 가장 아래에서 나를 견뎌주는 이 발, 그리 드러나지도 않고 심지어 오래 신을 신고 있으면 냄새까지 풍겨 못난 부위로 여기던 이 발에 감사하면서 조심조심 걷게 됩니다.

음악에도 마찬가지로 발의 역할을 하는 게 있습니다. 음악의 기둥이라고 하는 조성이 제대로 서 있을 수 있도록 기초를 튼튼히 잡아주고, 그 음악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주어 지지해주는 역할을 하는 ‘베이스’입니다. 보통 우리가 음악 이론을 잘 아는 사람이든 그렇지 않더라도 늘 즐겨듣는 사람이든, 음악을 들으면서 가장 먼저 귀에 들어오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화음’인데요, 예를 들어 음악이 끝날 즈음이 되면 누구나 ‘아, 이 음악이 끝났구나’하고 알려주는 게 바로 이런 화음들이 해주는 역할입니다.

가끔 예상하는 진행을 벗어나거나 전혀 새로운 화음으로 들어갈 때 깜짝 놀라거나 아니면 ‘와!’하고 감탄하게 되는 게 바로 우리가 음악을 알든 모르든 자연스럽게 우리 머릿속에 자리 잡은 화음의 진행이 선입견처럼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베이스는 바로 이 화음이라는 것을 정의 내려주는 데 가장 기본적인 역할을 합니다.

헨델 플루트 소나타 내림 나단조 악보.
합창을 하다보면, 농담 삼아 각 성부의 특성을 이야기하곤 하는데, 인터넷에서도 소위 합창 관련 사진들을 보면, 베이스들은 주로 멍하니 있다가 어떤 지적이 들어오면 “지금 우리가 어느 작품을 연습하고 있지요?”를 말하곤 합니다. 워낙 베이스 진행만 노래하다 보니 가끔은 조성만 바뀌었다 뿐이지 어쨌든 시작과 마침은 비슷하게 흘러가니까 그런 것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베이스들의 외모나 성격이 대체로 시원시원하고 느긋하다는 점도 한몫을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베이스는 예부터 음악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해 왔습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린 칸티오날 시대를 거치면서 호모포니 성가 합창곡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고, 이때부터 특히 베이스가 어떤 곡의 화음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물론 아직 칸티오날 시대는 교회 선법의 시대이기도 했고, 우연에 기반한 화성 진행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이 노래들을 들으면 무언가 옛날 노래인 것 같은데 오히려 현대곡인가 싶기도 할 겁니다. 화성이 우연적인 진행인지 아닌지를 살펴보려면, 바흐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프랑스의 장 필립 라모(Jean-Philippe Rameau)의 베이스 진행 이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본격적으로 베이스가 음악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기 시작한 시기는 바로 바로크 시대입니다. 이탈리아에서 옛 그리스 연극 음악을 연구하다가 모노디(Monodie)라는 음악을 만들어 내는데, 솔리스트가 혼자서 노래하는 동안 아무래도 반주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솔리스트가 부르는 곡의 선율과 그 곡의 기본 화음을 알려주는 베이스 음이 악보에 기록되기 시작했는데, 이 베이스 음을 바탕으로 해서 음 사이에 즉흥적으로 화음을 넣어주는 반주를 ‘게네랄바스’(Generalbass), 다른 말로 ‘통주저음’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선율과 베이스 두 음들만 기록되어 있었지만, 즉흥연주를 하다 보니 당시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던 여러 법칙이 나중에는 당연하지 않은 게 되기도 하고, 새로운 법칙들이 생겨나고 사라지고 또 서로 충돌하기도 하면서 연주자들이 조금 더 쉽게 연주하게 하기 위해서 친절하게도 베이스 음 위나 아래에다 숫자를 적어 넣게 됩니다. 이 숫자는 그 숫자가 함께 적힌 베이스 음에서부터 위로 계산해서 그 음들이 포함된 화음을 꼭 연주해야 한다는 지침이 됩니다. 그래서 게네랄바스를 ‘숫자 저음’이라고도 합니다. 게네랄바스라는 이름에서 독일말로 ‘바스’가 ‘베이스’를 의미하는데, 그만큼 게네랄바스에서의 베이스는 우리가 오늘날 화성을 생각할 때와는 조금 다르게 그 베이스 자체가 바로 기본 자리가 됩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장 필립 라모는 어떤 화음이든 그 화음의 근음을 화음의 기본으로 삼습니다. 예를 들어 게네랄바스에서는 ‘도미솔’이 5 3, ‘미솔도’가 6 3, ‘솔도미’가 6 4로 표시되는 데 반해 라모는 방금 말씀드린 세 화음의 자리가 어떻든 간에 ‘도’를 중심으로 여깁니다. 라모의 이론은 여기에서 끝내지 않고 이 근음에 바탕을 둔 베이스 진행을 말하는데, 화음 진행을 할 때 이 화음에서 다음 화음으로 넘어갈 때 3도, 5도, 7도의 화음으로 내려가면 아우텐틱(Authentisch) 진행이라고 하고, 반대로 3도, 5도, 7도의 화음으로 올라가면 플라갈(Plagal) 진행이라고 합니다.

본격적인 바로크 음악 이전의 칸티오날 성가는 이 아우텐틱과 플라갈이 무질서하게 섞여 사용되었다 해서 우연한 화성 진행의 시대라고도 합니다. 바로크 시대로 넘어오면 이 화성 진행은 아우텐틱 진행을 위주로 움직이게 되고, 바흐 코랄을 보면 몇 개의 법칙을 제외하고는 거의 아우텐틱 진행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처럼 화음 진행이 어떻든 결국 제일 먼저 살펴보는 게 베이스입니다. 베이스가 그 자체로 중심이 되기도 하고, 때론 베이스가 다른 위치로 바꾸어 숨겨져 있는 근음이 중심이 되기도 하지만 우리 머릿속에서는 자연스럽게 그 숨어있는 음을 베이스라고 여기곤 합니다. 마찬가지로 베이스를 담당하는 악기가 되었든 베이스를 부르는 성가대원이시든 처음 시작하는 음에서부터 마지막 마치는 음까지 음이 걸어가는 길을 동반하면서 묵묵히 지지대가 되어주시는 분들, 또 음악 외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공동체의 다리와 발이 되어주시는 분들을 기억해 봅니다.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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