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어둠 가득한 숲에서 우리는 찬양하리
2010년, 저를 아들같이 손자같이 예뻐해 주시던 독일인 장휘(엘마르) 신부님께서 저를 독일 본국 휴가에 데리고 가셨습니다. 독일에 도착하고 1주 정도는 엘마르 신부님이 나고 자란 고향 집에서 함께 지냈는데, 그 집은 엘마르 신부님과 가장 친했던 동생 부부가 물려받은 집이었습니다. 신부님이 본국 휴가를 앞두고 얼마 전에 그 동생이 돌아가셨고, 그래서 아마 본인도 독일 고향을 방문하는 마지막 여정이 될 거로 생각하셨나 봅니다.
당시에는 제가 나중에 독일로 유학을 오게 될 줄은 저나 신부님이나 전혀 생각지도 못했고, 그래서 마지막으로 저에게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을 보여주고 싶어 하셨습니다. 동네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자기가 사제서품 50주년 되던 해에 서품받은 친구라고, 아들 같다고 자랑하고 다니셨습니다.
그리곤 어렸을 때 놀이터가 되기도 했던 동네 뒷산에 함께 올랐는데, 그때 처음으로 어떤 충격을 받았습니다. 워낙 우리 수도원이 독일 문화나 전통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정작 문화충격은 받지 않은 상태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산과 자연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던 겁니다.
한여름, 한낮이었지만 침엽수로 빽빽한 뒷산은, 마치 중세 유럽의 모습을 담고 있는 영화의 한 장면같이 어떤 침묵과 고요함, 신비로움, 심지어 스산함을 담고 있었습니다. 산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엘마르 신부님이 “어때, 한국 산하고는 아주 다르지?”하고 물으셨을 때, “네, 좀 무서울 정도로 고요하네요”라고 대답한 기억이 납니다.
그 뒤로도 몇 차례 이런 산들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를 많이 챙겨주던 독일 레겐스부르크 소년합창단 출신 친구가 어느 날 함께 놀러 가자고 해서 어딘가로 끌려갔더니, 가 보니까 레겐스부르크 소년합창단과 온종일 바이에른 삼림 국립공원을 걷는 도보 성지순례였습니다. 이 아이들과 걸으면서 묵주기도도 함께 했었는데, 가장 어두운 산길 한 가운데에서 학교 입학시험에 통과했다는 연락을 받아 기분이 참 묘했습니다.
또 가장 친한 독일 친구들과 성주간에 숲길을 걸으며 말러스도르프 수녀원으로 순례했던 기억도 납니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는 이 친구들과 그날만 마실 수 있다는 도펠복비어(Doppelbockbier)를 마시기 위해, 독일의 전통대로 걸어서 순례하고, 순례 후 시원하게 한 잔 마신 다음 한밤중에 보름달을 이정표 삼아 어두운 길을 가로질러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저 개인적으로는 독일의 산과 숲의 인상이 고요함과 침묵, 신비의 모습으로 가득합니다.
2020년, 대구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의 ‘행간에서 읽는 신앙’이라는 프로그램에 한 달에 한 번씩 참여했었습니다. 성바오로딸수녀회의 권 마리아 수녀님께서 선정하신 책과 영화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가을쯤에 막스 피카르트(Max Picard)의 「침묵의 세계」를 골라 주셨습니다.
이 책은 그동안 제가 읽은 책들 가운데 열 손가락 안에 꼽아도 좋을 만큼 큰 감명을 주었는데, ‘침묵’에 대한 내용이 너무 깊고 좋아서이기도 했지만, 특히나 숲의 어두움, 숲의 침묵에 대한 내용을 부족한 제 말재주로 감히 표현하지 못하고 그냥 마음속에 지니고 있었던 제 느낌과 똑같은 내용을 그대로 글로 끄집어낸 데 놀랐기 때문입니다.
아쉽게도 쿠바에 가지고 올 수 있는 짐이 한정되어 있어, 그 책을 제 짐 가운데 두고 왔고, 그래서 정확히 어떤 글이었는지는 잊어버렸지만, 그래도 작가가 숲의 어두움 혹은 어두운 숲 위로 떠오르는 달을 바라보며 읊은 시를 인용합니다. 처음에는 ‘시가 운치 있네’하고선 몇 쪽을 더 넘겨 읽다가 갑자기 자주 부르던 성가 가사가 떠올랐습니다. 책에 원문 가사가 실리지 않아서 그냥 넘길 뻔했던 시였는데, 찾아보니 제가 떠올린 성가가 맞았습니다.
“Der Mond ist aufgegangen,/ die goldnen Sternlein prangen/ am Himmel hell und klar;/ der Wald steht schwarz und schweiget,/ und aus den Wiesen steiget/ der weiße Nebel wunderbar.”
(달이 떠올랐네. 금빛 찬란한 작은 별들은 하늘에서 밝고 맑게 빛나고 있네. 숲은 어두움과 침묵을 지키네. 들판에서는 놀랍게도 하얀 안개가 피어오르네.)
계몽주의 시대에 합리주의에 반대해 신앙을 장려하고, 차분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로 신심을 북돋우는 시를 쓴 마티아스 클라우디우스(Matthias Claudius)가 1779년 발표한 저녁 노래입니다. 이 시는 바로크 시기 성가 작사가로 유명한 파울 게르하르트(Paul Gerhardt)의 ‘이제 모든 숲이 휴식을 취하네’(Nun ruhen alle Wälder)를 모델로 삼았다고 합니다.
“Nun ruhen alle Wälder,/ Vieh, Menschen, Städt’ und Felder,/ es schläft die ganze Welt;/ ihr aber, meine Sinnen,/ auf, auf, ihr sollt beginnen,/ was eurem Schöpfer wohlgefällt!”
(이제 모든 숲이 휴식을 취하네. 가축도, 사람도, 도시도, 들판도 휴식을 취하네. 온 세상이 잠자리에 들었네. 하지만 내 모든 감각들아, 너희만은 깨어나거라, 일어나거라. 너희의 창조주께서 좋아하실 일을 시작해야 하리니.)
이 시는 게르하르트의 절친이자 당대 유명한 작곡가였던 요한 크뤼거(Johann Crüger)가 성가책을 펴내면서 게르하르트의 시에다 하인리히 이사악(Heinrich Isaac)의 ‘인스부르크, 나 이제 너를 떠나가네’(Innsbruck, ich muss dich lassen)의 선율을 붙여 더 유명해지게 되었습니다.
이 지면에는 두 시 모두 첫 번째 연만 인용했지만, 나머지 연들도 읽어보고 또 독일 지역에서는 여전히 실제 성가로 쓰이고 있는 만큼 성가로도 불러보면 가을밤의 고요하고 신비로운 정취를 맘껏 느끼게 되면서 아울러 창조주 하느님께 자연스레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Der Mond ist aufgegangen’ 노래의 선율을 부르고 있자니 멘델스존 오르간 소나타 다단조의 마지막 악장 푸가가 자꾸 떠오릅니다. 그래서 오르간 졸업 시험 곡 가운데 하나였던 멘델스존 오르간 소나타를 치면서 자꾸만 가을밤을 떠올렸습니다. 숲 위에 떠오르는 보름달과 고요로 가득한 숲이, 오히려 침묵의 찬양으로 가득한 곳으로 변화되는 것을 가득 느끼면서 연주했습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또 저를 예뻐해 주셨던 엘마르 신부님을 추억하며 가을밤, 추석을 이곳에서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