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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산티아고에서 온 편지 - 멈춰있는 까미노 (2020년 6월 21일, 가톨릭평화신문)

procurator 0 842 2020.06.24 15:22

순례길 못 걷는 요즘… 하느님 안에서 ‘영적 순례’ 떠나야

산티아고에서 온 편지 - 멈춰있는 까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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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적 끊긴 까미노.


코로나19로 사라진 순례자들


모두 멈춰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지금 가는 길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서 있다. 완전히 정지되어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모두 숨을 죽이고 있다. 깊은 침묵 가운데로 정적만이 흐른다. 이런 일은 처음이다. 정말 낯설다. 사람의 발길이 끊어지니 모든 것이 낯설다. 3월 14일에는 갈리시아 지방이, 15일에는 이곳 카스티아-레온 지방을 비롯한 전체 스페인이 멈췄다. 기나긴 겨울이 지나고 생명이 꽃피는 봄이 왔건만, 만물이 움직이는 역동적인 계절이 왔건만, 까미노 위에는 아직도 멈춤의 침묵만이 흐르고 있다. 순례자들의 발걸음 소리가 침묵 속으로 사라졌다. 한겨울만 빼놓고 내내 분주했던 라바날 델 까미노 우리 마을도 조용하다. 

거의 3개월 만인 6월 2일, 아침 미사 때 처음으로 여성 순례자가 성당에 찾아왔다. 정말 얼마 만인가! 너무나 반가웠다. 우리는 정말로 순례자를 환영했다. 순례자가 선물인 사실을 오늘 처음으로 절실히 깨달았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져서 인사만 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지금까지 여기 살고 있으면서, 순례자들을 자신 있게 초대했다. “가던 길을 멈추세요. 여기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멈추세요. 멈춰야 보입니다. 그러면 놀라운 선물을 발견할 것이에요.” 그리고 약속한다. “아무리 시간이 없더라도 걱정하지 마세요. 날아갈 겁니다. 산티아고까지 날아갈 겁니다.” 그런데 지금 나 자신이 멈춤을 실제로 살고 있다. 나 자신이 이렇게 진짜 멈추게 될지는 몰랐다. 함께 사는 수도 형제가 말했다. “어떻게 보면 주님이 우리에게 베푼 안식년”이라고. 멋진 생각의 전환이다. 

멈춤은 ‘침묵’과 같은 말이다. 공허한 부동의 침묵이 아니라 꽉 찬 멈춤의 침묵이다. 삶이 순해지고 겸허해지는 깊은 멈춤의 침묵 속에서, 우리의 근원을 생각하고 내적으로 그곳에 되돌아가는 때다. 적극적인 능동적인 멈춤이 바로 침묵이다. 수도 형제들도 내내 달려왔던 분주함을 떠나 각자 침묵과 고요함 속에서 삶의 뿌리를 향해 내적인 길을 걷고 있다. 멈춤의 침묵 가운데 나를 비롯한 모든 것이 근원으로, 만물의 뿌리로, 원천으로 돌아간다. 

멈췄을 때만 우리는 걸어온 우리 길을 되돌아볼 수 있다. 앞으로만 갈 때는 보지 못한다. 아니, 볼 시간도 되돌아봐야 할 생각도 없다. 왜냐하면, 가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이다. 한 순례자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멈춰서,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니 곳곳에 물구덩이들이 많았다. 아~ 이 물웅덩이들이 지난날 내가 무수히 흘렸던 눈물이구나! 물웅덩이가 아니라 내가 흘린 눈물의 웅덩이구나.” 얼마나 많은 밤이 홀로 지새운 긴 밤이었나. 왜 한숨이 나는 걸까.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실패와 고난의 굴곡을 지나왔다. 잊고 지냈던 지친 마음을 만난다. 정말 먼 길을 걸어왔구나. 한편 나 자신이 참 대견하기도 하다. 나를 위로한다.


공동선 위해 돌아보고 기도해야 

멈춤은 우리가 사는 사회와 세계를 깊이 보게 된다. 선진국이라는 미국이나 유럽 여러 나라가 굉장한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막상 여러 가지 위기 앞에 부딪히니까 휘청거리고 있다. ‘인간 안보’라는 굉장히 중요한 화두가 던져졌다. 안보라고 하는 것을 ‘군사적 우위’에서만 생각했었다. 이제는 인류를 지켜내는 일, 인간의 생명을 지키는 일이 최우선적이며, 어떤 사회든지 그걸 지켜내기 위해서 의료와 보건 등 공공체제, 공공성의 체제가 작동을 해야 한다. 특히 공동선을 위한 정치 지도자와 정부의 헌신과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우리는 멈췄을 때 기도하기 위해 두 손을 모을 수 있다. 우선 기도 안에서 나 자신을 위로할 수 있다. 나를 만드신 주님께서 기도 안에서 나를 위로하신다. 그리고 나를 넘어 다른 이를 위한 기도를 한다. 기도의 연대 안에서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매일 죽음의 소식을 듣는다. 그 죽음 안에서 나의 죽음도 미리 체험한다. 기도할 수밖에 없다. 나약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자각하게 된다. 결국 ‘나’라는 존재는 빈손으로 이 세상에 왔다가 다시 빈손으로 이 세상을 떠날 것이다. 우리보다 먼저 앞서 근원으로 돌아가는 영혼을 위해 기도한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가족들의 아픔과도 함께한다. 묵주를 손에 들고 오늘도 멈춰서 투병 중인 모든 이들과 그들을 돌보는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영적 멈춤으로 다시 하느님께 걸어가라

결국, 멈춤의 침묵 가운데 더 강렬하게 확신하는 것은 우리 모두 ‘순례자’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늘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어떤 분을 만나러 가고 있다. 길이 누구인지 알고 그 길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알게 된다. 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분이 우리가 걸어가는 길이며 우리를 목적지인 하느님 아버지께 인도하신다. 엠마오 가는 길에서 두 제자는 이렇게 청을 한다.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루카 24,29) 예수님을 알아본 후 두 제자는 이렇게 서로 이야기한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루카 24,32) 가장 암울했을 때 가장 고통스러웠을 때 가장 힘들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내 옆에서 함께 걸어주셨다는 것을 깨닫는다. 순례자이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간다.”(요한 16,28) 우리도 하느님에게서 와서 하느님께 다시 돌아가는 순례자다. 우리 존재의 근원은 사랑이신 하느님이시다. 까미노, 곧 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멈춤은 우리 베네딕도회의 정주(Stability, 定住) 서원과 매우 비슷한 것 같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순례’와 한 곳에 머무는 ‘정주’가 만난다. 정주는 구체적인 한 수도원에 온전히, 그것도 죽을 때까지 머무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구체적인 공동체에 완전히 뿌리내리는 것이다. 어떤 환상이나 생각이 아니라 인내와 정성으로 구체적인 현실에 굳게 서 있는 것이다. 수도원을 방문하는 순례자들은 순례 안에서 정주를 만나고 정주 안에서 순례를 발견한다. 참으로 놀라운 경험이다. 순례란 길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근원이신 하느님 안에 내가 더욱 깊이 서 있는 정주하는 것임을, 동시에 정주는 길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근원이신 하느님을 향해 걸어가는 영적 순례임을 발견한다. 

영적 멈춤은 우리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를 알게 한다. 하느님 안에 내가 굳건히 멈춰 있을 때만 나는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다. 다시 앞을 향해 순례 여정을 걸어갈 수 있다. 하느님 앞에 겸손해진다. 하느님 안에서만이 우리는 움직이고 숨 쉬고 살 수 있다. 하느님 안에서만 우리의 생명도 죽음도 다 있다. 아빌라의 대 데레사 성녀의 기도를 우리 기도로 모신다.


아무것도 너를 어지럽히지 않게 Nada te turbe


아무것도 너를 놀라게 하지 마라 nada te espante 

모든 것이 다 지나가지만 Todo se pasa

하느님은 변치 않으시는 분 Dios no se muda

인내가 la paciencia

모든 것을 얻게 하리니 todo lo alcanza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 quien a Dios tiene

부족한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nada le falta

오직 하느님으로 넉넉하도다 solo Dios bas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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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영균 신부(성 베네딕도회 라바날 델 까미노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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