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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설정 100주년 맞는 원산대목구의 어제와 오늘 - 상 (2020년 7월 5일, 가톨릭평화신문)

procurator 0 986 2020.07.07 10:54

서울 떠나 함경도에서 선교 꽃 피운 ‘성 베네딕도회’

설정 100주년 맞는 원산대목구의 어제와 오늘 <상> 

2020.07.05 발행 [15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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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 독일의 히르사우수도원을 모델로 지어진 덕원수도원과 덕원신학교(아래) 전경. 동아시아 서양식 근대건축에서 예술적으로나 사상사로나 걸작으로 평가를 받았다. 왼쪽 아래는 원산대목구 초대 대목구장이자 덕원 성 베네딕도 수도원장인 보니파시오 사우어 주교아빠스.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제공

75년을 공산 치하에서 현존하는 ‘침묵의 교회’. 앞선 25년조차도 일제 강점 아래서 선교해야 했던 ‘수난의 교회’. 하지만 그 오랜 수난과 피의 박해까지도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려는 신앙으로 지켜온 ‘순교의 교회’, 북녘땅 원산대목구다. 그 빛나는 전통을 이어온 교회, 원산대목구가 오는 8월 5일로 설정 100주년을 맞는다. 이를 기억하며 세 차례에 걸쳐 원산대목구의 어제와 오늘을 돌아본다. 

성 베네딕도회와 원산대목구

1920년 8월 5일, 함경남ㆍ북도에 원산대목구가 설정됐다. 서울ㆍ대구대목구에 이어 한국 천주교회의 세 번째 가지로, 서울대목구에서 분리ㆍ설정된 것이다. 선교를 맡게 된 주역은 한국에 들어온 지 11년밖에 되지 않은 성 베네딕도회 서울 백동수도원이었다. ‘수도원의 돌 하나, 나무 하나까지 자신의 몸 같이 여겼던’ 백동수도원장 보니파시오 사우어 아빠스는 왜 서울을 떠나 원산대목구 선교를 맡았을까? 그것도 한반도에서도 가장 척박한 땅 ‘관북’ 함경도 일대를 선교지로 선택했을까? 

이를 이해하려면, 성 베네딕도회가 한국에 진출한 목적으로 돌아가야 한다. 1909년 2월 25일, 성 베네딕도회는 조선대목구장 뮈텔 주교의 요청으로 한국에 진출한 첫 남자수도회로 서울 백동에 자리했다. 교육 사업을 위해 진출한 베네딕도회는 1910년에 기술학교인 숭공학교를, 1911년에 사범학교인 숭신학교를 설립했다. 하지만 조선인에 대한 고등교육을 못마땅해 했던 일제의 방해로 숭신학교는 개교 2년 만에, 숭공학교는 개교 11년 만에 문을 닫았다. 

베네딕도회은 이에 본당 사목으로 눈을 돌렸으나, 당시 서울대목구 사목을 맡고 있던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은 수도승들이 본당을 맡는 데 반대했다. 그때 선교적 돌파구로 제시된 것이 바로 원산대목구의 분리였다. 

뮈텔 주교는 평안도를 베네딕도회 포교지로 제시했으나, 평양 일대에는 이미 개신교가 우세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기에 사우어 아빠스는 당시 발전 가능성이 컸던 원산을 선택했고, 교황청도 뮈텔 주교와 베네딕도회 간 협의를 받아들여 함경도를 베네딕도회에 위임했다. 사우어 아빠스는 이어 그해 8월 25일 원산대목구장에 임명됐으며, 이듬해인 1921년 5월 1일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주교아빠스로 성성됐다. 또한, 1921년에는 간도(연길)선교지와 북만주 동부 의란선교지까지 위탁받아 한때는 전체 선교지가 총길이 1100㎞, 총면적 20만 5000㎢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을 관할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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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어서 공소에 다니는 일이 힘에 부쳤던 선교사들은 독일에 모터를 단 자전거를 보내달라고 요청해 이를 받아서 사용하였다. 사진에 등장하는 선교사는 비트마로 파렌코프 신부인데, 그의 자전거에도 모터가 달려 있다.

함경도 복음 전래사

함경도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게 된 건 1801년 신유박해 시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박해로 경기 양근 출신 한학자 조동섬(유스티노)이 유배돼 신앙생활을 한 것을 시작으로 함경도로 몸을 피한 신자들에 의해 처음으로 신앙공동체가 형성된다. 1863년 5월께 제4대 조선대목구장 베르뇌 주교가 함경도 신자들에게 세례를 줬다는 기록도 보인다. 하지만 1866년 병인박해로 영흥에서 19명이 체포돼 순교했고, 함경도 공동체는 사실상 와해됐다. 

1876년 조일수호조규에 따라 1880년 첫 개항지 원산이 문을 열게 되면서 1887년 7월 함경남도(현 북강원도) 원산에 첫 본당이 설정돼 원산 선교가 본격화했다. 이에 앞서 같은 해 5월 원산 인근에 안변본당이 설정됐으나 1896년 내평본당이 설정되면서 폐쇄됐고, 원산대목구가 설정되기까지 원산과 내평, 2개 본당이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 당시 함경도교회의 중심은 원산본당으로, 1890년 67명에 불과했던 신자 수가 1899년이 되면 486명으로, 9년 만에 7배나 늘어나는 폭발적 증가세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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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원수도원 농장과 작업장의 목가적 풍경.

덕원수도원과 신학교

함경도를 선교지로 선택했지만, 베네딕도회원들은 서울에서 완전히 철수하는 것을 원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수도 생활을 지속하기 위해, 또 교구 연락처로 서울에 최소한의 거점을 남기고 싶어 했다. 그러나 서울대목구에서 완전 철수를 강력히 요구해 어쩔 수 없이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베네딕도회는 원산 시내에서 4㎞ 떨어진 덕원(함남 덕원군 부내면 어운리)으로 수도원을 옮긴다. 그 기간이 무려 7년이나 걸렸다. 

“여러분이 서울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원산에서는 더 훌륭하게 할 수 있습니다.” 

1920년 10월, 백동수도원을 찾은 주일 교황사절 피에트로 푸마소니 비온디 대주교의 격려는 특히 베네딕도회원들에게 큰 힘이 됐다. 오롯이 주님께만 의탁하며 베네딕도회 공동체는 1922년 수도원 건설에 들어가 440㏊(440만㎡)에 이르는 넓고 수려한 부지에 1927년 11월 덕원수도원을, 1927년 12월 덕원신학교를, 1931년 12월 덕원수도원 성당을 각각 완공했다. 유명한 중세 수도원인 독일 히르사우(Hirsau) 수도원을 다시 보는 듯한 로마네스크풍의 덕원 수도원은 이로써 함경도 선교의 신기원을 열었다. 

사우어 주교아빠스는 기존 원산ㆍ내평본당과 연길선교지의 용정ㆍ삼원봉ㆍ팔도구본당을 인수, 베네딕도회원을 주임으로 임명했다. 교구 인수 당시 함경도 신자 수는 함경북도에 40명, 함경남도에 600명 등 총 640명에 불과했다. 이에 사우어 주교아빠스는 함경북도 선교 거점으로 회령과 청진에 본당을 신설했고, 수도원이 들어설 덕원에도 본당을 신설, 3개 본당이 새로 만들어졌다. 

또한, 함경도 선교의 핵심적 역할을 할 조선인 사제 양성이 맨 먼저 시작됐다. 베네딕도회는 1921년 11월 폐교한 숭공학교 건물에서 원산대목구 신학교를 개교하고, 원산과 내평, 간도에서 온 학생들 33명을 대상으로 라틴어와 교리교육에 들어갔다. 교장은 원장인 안셀름 로머 신부, 사감은 부원장인 카누트 다베르나스 신부가 겸직하다가 1926년 세바스티아나 슈넬 신부가 전담했으며, 1927년 말 신학교가 완공되자 덕원으로 신학교를 옮겼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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