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이 바라 보이는 칠곡군 석적읍 왜관수도원 성직자 묘역인 천주교 창마묘지에 이장된 구상 시인 부부 합장 묘지.구상 시인 타계 20주기를 앞두고 그가 시의 원천이었던 낙동강 변 칠곡으로 다시 돌아왔다.
구상(具常, 1919~2004) 시인은 일제강점기인 지난 1919년 암울한 시기에 태어난 대한민국 시인 중 유일하게 프랑스문인협회가 선정한 세계 200대 문인이면서, 노벨문학상 본심 후보에까지 오른 한국 문단의 대표 시인이다.
그런 그가 지금은 칠곡군 석적읍 중지리 왜관수도원 성직자 묘역인 천주교 창마묘지으로 이장돼 부인과 함께 한 줌의 흙이 돼 고이 잠들어 있다.
원래 구 시인의 묘는 이곳에 없었다.
향년 86세 되던 지난 2004년 5월 폐 질환으로 선종한 그는 경기도 안성 천주교 공원묘지에 안장됐다가 타계 20주기를 앞둔 2023년 11월 본적지이자 친정과도 같은 왜관읍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구상 시인 고명딸인 구자명 소설가는 이번 이장에 대해 “아버지는 생전에 왜관수도원을 ‘친정’이라고 표현하셨고,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시던 분들, 왜관에 정착하면서 교류한 분들로 묻혀 계신다”며 “이분들과 함께 계시면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천상복락을 누리실 것 같아서 옮기게 됐다”고 전했다.
구상은 서울에서 태어나 함경도에서 자라다 6·25 전쟁 직후인 1953년 부인 서영옥 여사가 개원(순심 의원)한 칠곡군 왜관읍에 기거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이러한 연유에서 인지 그의 본적은 아직도 ‘칠곡군 왜관읍 왜관리 789’다.
왜관으로 이사한 그는 이곳에서 1974년 폐질환 치료를 위해 서울로 이사하기 전까지 20년 동안 칠곡의 낙동강 변을 거닐고 수도원 농장에서 밭일을 하며 시를 썼다.
그렇게 칠곡에 있는 동안 삶의 이상과 꿈을 연결해주는 강물, 즉 낙동강을 바라보았던 그는 연작시 ‘밭 일기’ 100편과 ‘강’ 60편을 세상에 나오게 했다.
특히 그는 노벨문학상 본선에까지 올랐던 6·25 전쟁의 체험을 형상화한 ‘초토의 시’와 가톨릭 영성을 바탕으로 쓴 ‘그리스도 폴의 강’ 등 위대한 시를 탄생시켰다.
그 자리는 현재 구상문학관이 들어서 있고 2만7천여 권의 도서가 소장돼 있다.
이렇듯 구상 시의 원천이었던 칠곡과 낙동강은 바라봄이 아닌 깊은 관찰에서 피워내고 이를 잉태시켰다.
왜관을 매개로 구상과 3살 위인 이중섭 화가와 우정을 한층 꽃을 피웠다.
1955년 구상의 초대로 중섭 화가는 왜관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다는 이야기는 두 친구의 마지막 우정을 더욱 다졌을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이중섭이 구상이 병원 신세를 지고 있을 때 병문안을 가면서 과일 하나 살 돈이 없어 작품 ‘천도복숭아’를 그려 우정을 표시했고, ‘시인 구상네 가족’, ‘왜관 성당 부근’ 등 왜관과 관련된 작품을 남겼다.
구상은 지난 1956년 이중섭이 타계했을 때 발표한 ‘초토(焦土)의 시’ 연작 중에 이중섭을 추모하는 시가 한 편 있다.
역사적 격변기를 살았던 구상이 시제로 대부분 사용했던 낙동강과 왜관은 자신을 풀어내는 시(詩)요, 퍼내고 또 퍼내어도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생수의 시(詩)였다.
이임철 기자 im72@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