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음악 이끌며 노랫소리 빈 곳까지 풍성하게 만들어
오르간은 살아 숨 쉬는 악기
전례음악 풍부하게 해주고
부족한 부분 채워주는 역할
코로나19 시기에 더 큰 도움
2019년 12월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성당에서 열린 음악회. 오르간은 노래 사이사이를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이장규 신부 제공
2020년,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이 전 세계를 휩쓸면서 첫해에는 줌(Zoom)을 비롯한 화상 관련 프로그램들이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참 대단한 게, 이 프로그램들을 그저 단순한 화상회의만이 아니라 수업 및 강좌, 독서 모임, 비대면 모임, 심지어는 술자리까지 확장해서 활용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지난해에는 영상 없는 음성 기반 플랫폼들이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클럽하우스(Clubhouse)가, 얼마 지나지 않아 음(mm)이 목소리로 이야기 나누는 것을 그리워하는 이들을 엮어주었습니다.
물론 학교 수업 때문에라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영상 플랫폼에 비해 음성 플랫폼은 아직 비주류에 머무르고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보면 플랫폼 참여자들이 지역과 시간을 초월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는 면에서는 더 자발적인 분위기입니다. 저도 지난여름 두어 달 정도 열심히 활동한 적이 있습니다. 이 음성 플랫폼에서 아주 기가 막힌 재즈 피아노 즉흥연주를 선보이셨던 분이 음악가 팀을 모아 크루를 결성했는데, 모자란 실력임에도 불구하고 저 역시 여기에서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일주일에 두 번씩 선보였습니다. 저를 초대하셨던 재즈 피아니스트께서 한번은 자기가 열었던 방에서 사회를 보시며 저를 대대적으로 소개해 주셨는데, 그때 저의 연주를 듣고 나서 하시는 말씀이 “왜관수도원에 한 번도 가 본 적은 없지만,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어떤 성당인지, 공간의 울림에 대한 상상까지 하게 만든다”고 하셨습니다.
오르가니스트는 그저 손가락만 빨리 잘 돌아가고, 눈앞에 있는 악보를 하나도 틀리지 않고 쳐내고 하는 그런 기계적인 연주자가 아닙니다. 파이프 오르간은 살아 숨 쉬는 악기라고들 하는데, 연주자는 때로 수천 개의 파이프들이 살아서 숨을 쉬고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공간, 울림, 음의 색깔, 파이프가 숨을 내뱉고 들이마시는 찰나의 미묘한 변화를 알아야 합니다. 또 손끝으로 느껴지는 무게, 그리고 돌아오는 진동까지 모두 민감하게 느껴야 합니다.
레겐스부르크 교회음악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 집중적으로 1년 동안 레슨을 받고, 본래 오르가니스트도 아닌데 입학곡으로 치기 어렵다는 곡을 그냥 통째로 외워 가서 칭찬을 받으며 입학했습니다. 사실 외워서 치지 않으면 도저히 악보를 보면서 쳐낼 자신이 없기 때문이긴 했지만, 그때 조금 의기양양하긴 했습니다. 물론 잘 친 게 아니라 그저 간신히 쳐 낸 수준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제 나도 제대로 어렵고 멋진 곡을 배우리라’는 나름 큰 뜻을 품었습니다.
그런데 입학하고 한 학기를 그렇게 헛바람 들어 지내다가, 저를 가르쳐 주시던 할아버지 선생님이 은퇴하시고 저보다 어린 친구에게 배우게 되었습니다. 첫날 “네가 쳤던 곡들 다 쳐 봐” 해서 멋지게 쳤는데, 1학년 나머지 한 학기 동안 했던 건 손가락과 손등 근육 힘 기르기, 손가락 끝으로 파이프 오르간의 바람이 들어가고 나오는 것을 제대로 느끼기, 자세 제대로 잡기, 소리 제대로 듣기, 박자 감각 익히기 등이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자존심이 와장창 무너졌는데, 나중에 보니 음악을 잘 들으면서 칠 수 있게 이끌어 준 고마운 방법들이었습니다. 물론 레퍼토리를 엄청 늘려주는 선생님을 둔 친구들이 여전히 부럽긴 하지만, 저는 많은 곡들을 사람들 앞에서 잘 쳐내는 데에 재능이 별로 없으니, 불 꺼진 조용한 성당에서 한 곡 한 곡 천천히 공부하고 ‘이 곡이 나한테 전해주는 게 뭘까’ 고민하고, 또 그 소리를 들어보고 하는 데 만족하고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