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교구는 지난해와 올해 ‘말씀의 해’를 보내고 있다. 말씀의 해는 신앙의 기본인 성경을 교구민들이 가까이함으로써 말씀 안에서 힘과 희망을 얻도록 하는데 그 취지가 있다.
김찬규(요한 사도·76·대구 성미카엘본당)씨는 최근 붓글씨로 신구약을 완필했다. 2011년 3월 시작한 지 11년 만이다. 성경을 필사하는 매 순간이 하느님과 함께하는 시간이었다고 김씨는 말한다. 특히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신자들이 말씀의 해를 기회로 삼아 성경필사에 도전하면 좋겠다”고 권유한다.
“문장화된 기도문을 읽고 묵상하는 기도도 좋지만, 말씀을 쓰면서 그 의미나 가르침을 되새기는 일은 정말 훌륭한 기도입니다. 말씀을 쓰는 모든 순간이 저에게는 하느님께 바라고 매달렸던 감사의 시간이었습니다.”
김씨가 붓으로 성경을 필사한 것은 2010년 아내와의 사별이 계기가 됐다. 황망함 속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는 갑자기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붓을 들게 됐다.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평소 붓글씨 쓰기를 좋아했던 김씨는 두루마리로 된 화선지에 성경을 필사하기 시작했다. 구교우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성경과 그리 친하게 지내진 않았던 김씨. 필사를 하기 전까지 그에게 성경은 그저 성당에서 읽어주는 책 정도로만 인식됐다. 그랬던 그가 성경 필사를 하면서 말씀의 오묘함에 푹 빠져버렸다. 덕분에 신앙생활에 더욱 열심히 임하는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게 됐다.
“한 글자만 잘못 적어도 두루마리 한 장을 버리게 되니, 한 자씩 쓸 때마다 붓을 다듬어가며 씁니다. 정성 들여 쓰다보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특별함을 느낍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보살펴 주시는 기분이랄까요?”
전문가의 솜씨는 아니지만, 그의 정성어린 글씨는 이웃 신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011년에는 대구 성미카엘성당, 2019년에는 대구 다사성당에서 각각 열흘 동안 성경 필사본을 전시하며 호평을 받았다. 조카인 이종호(요나) 수사가 살고 있는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도 작품을 기증했다. 그 외에도 말씀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이웃에게 그는 정성 들여 쓴 붓글씨 작품을 선물하고 있다.
신구약 모두를 적은 필사본 두루마리 길이는 2㎞가량 된다. 김씨는 “불러주는 곳이 있다면 전시하고 싶다”고 말한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보다는, 좀 더 많은 신자들이 성경필사본을 보며 필사에 동참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다.
적지 않은 나이지만, 최근에는 또 다른 목표가 생겼다.
“성 김대건 신부님의 서한집을 모두 필사해보고 싶어요. 신부님도 이런 화선지에 붓글씨로 글을 적으셨겠죠? 그분의 삶과 영성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서 목표로 삼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