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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 시인] 소외된 이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간 시인 구상 (가톨릭평화신문, 2023-04-13)

procurator 0 42 02.26 10:22

[백형찬의 가톨릭 예술가 이야기] (16)구상 요한 세례자 (하) 

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04/19/KXW1681867272827.jpg 이미지구상은 걸레 스님 중광 등 시대의 아웃사이더 기인들과 친분이 깊었다. 사진 왼쪽부터 중광, 한국박물관협회 회장 김종규, 구상, 혜련 스님.

 

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04/19/Qzb1681867300124.jpg 이미지칠순의 나이를 살며 구상은 “나는 한평생, 내가 나를 속이며 살아왔다”고 고백한다.



구상과 각하 박첨지

6ㆍ25 전쟁이 일어났다. 구상(요한 세례자, 具常, 1919~2004)은 육군종군작가단에 소속되었다. 서울 수복 때에는 정훈국 선발대에 합류했다. 승리일보를 만들어 서울 시민에게 뿌렸다. 국군은 계속 북진했다. 북진을 따라가면 원산에 계신 어머니를 모셔 올 수 있었다. 그러나 신문을 만드느라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구상은 이 일을 평생 후회했다. 형 구대준 신부는 전쟁 전에 덕원수도원을 지키다가 다른 신부들과 함께 공산당에 체포되어 평양 감옥에 수감되었다.

휴전협정이 맺어지고 정부는 서울로 환도했다. 구상은 경상북도 왜관에 정착했다. 왜관을 선택한 이유는 덕원수도원이 왜관에 수도원을 건립할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덕원수도원에 대한 애틋한 사랑과 추억이 구상을 왜관으로 오게 한 것이다. 수도원 근처에 집 한 채를 샀다. 부인은 순심의원을 개업했다. 왜관에서 대구 영남일보사로 출근했고 효성여대로 강의도 나갔다. 결핵이 또 재발했다. 피를 토해냈다. 천식까지 겹쳤다. 부인은 서둘러 구상을 일본 도쿄 인근에 있는 결핵 전문 병원에 입원시켰다. 그곳에서 갈비뼈 6대를 자르고 폐를 꺼내 절개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귀국 후에 구상은 군사정권에 대해 날 선 비판을 했다. 우정을 나누었던 박정희가 독재자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고 크게 실망했다. 그 실망을 시로 표현했다.

“그는 샤먼이 되어있었다 / 그 장하던 의기가 / 돈키호테의 광기로 변하고 / 그 질박하던 성정이 / 방자로 바뀌어 있었다.”

박정희와는 5·16 군사 쿠데타 전부터 의기투합하는 사이였다. 쿠데타 후에는 국가재건최고회의 상임고문 자리를 권하기도 했다. 또한, 일본 병원에서 폐수술 할 때 치료비에 보태쓰라고 상당 액수의 돈을 보내오기도 했다. 구상은 그러한 박정희를 ‘각하’라고 부른 적이 없었다. 그냥 ‘박첨지’라고 불렀다.



사회적 약자의 벗으로

구상은 하루의 시작과 끝을 기도로 했다. 그의 시 ‘새해’에서 “하늘을 우러러 소박한 믿음을 가져/ 기도는 나의 일과의 처음과 끝이다”라고 했다. 구상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아침 기도와 저녁 기도를 드렸다. 몸이 아플 때도,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고통스러울 때도 기도를 드렸다. 문우(文友)들과 어울려 술을 취하도록 마시고 잠들었어도 그 다음 날에는 반드시 새벽에 일어나 미사를 봉헌하러 갔다. 이렇듯 구상은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했다.

따뜻하고 훈훈한 일화가 있다. 명동대성당 입구에 뇌성마비로 전신이 비틀린 사람이 앉아있었다. 그는 상자를 앞에 놓고 오가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며 구걸했다. 구상은 성당에 올 때마다 그 사람에게 적선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친구가 되었다. 어느덧 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서로가 낯익고 친숙해져 멀리서 구상의 얼굴만 보아도 반갑다고 혀 꼬부라진 소리를 지르곤 했다. 어느 날은 그가 주스 한 병을 건넸다. 또 어느 날은 장미꽃 한 송이를 들고 있다가 비틀어진 팔과 꼬인 손으로 꽃을 내밀었다. 구상은 그 우정에 어떻게 화답할 줄 몰라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성당으로 들어갔다. 장궤틀에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장미꽃을 받들고는 기도했다. “하느님! 당신의 영원한 동산에서는 저 사람과 제가 허물을 벗은 털벌레처럼 나비가 되어 함께 날게 하소서!” 구상은 뇌성마비 친구가 건넨 선물에 기도로 화답한 것이다.

그리고 살인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고 15년째 옥살이하는 사람을 양아들로 삼았다. 사형 집행만 남은 사람이었다. 그를 구하기 위해 한 스님과 백방 노력했다. 그 결과, ‘무기’로 감형되었다. 이 사건은 드라마로 방영되어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다.

또한, 구상은 북한에서 투옥되어 순교한 것으로 추정되는 구대준 신부의 사제 서품 40주년을 맞아 기념 미사를 봉헌하고 싶었다. 그래서 예전에 이중섭에게 받은 그림을 호암미술관에 넘기고 사례비로 1억 원을 받아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 미사 예물로 봉헌했다.



정권의 표적이 되다

구상은 기질적으로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자유당 정권 말기에 구상의 일생에서 가장 억울한 사건이 벌어졌다. 일명 ‘레이더 사건’이다. 국가보안법 파동이 일어났다. 야당에서는 외곽조직으로 민권수호국민총연맹을 만들어 대항했다. 구상은 그 조직의 문화부장을 맡았다. 그래서 데모에 앞장서고, 집회의 연사로 나갔다. 이렇게 되자 구상은 정권의 타깃이 되었다.

구상을 없애려고 갖은 조사를 다 했으나 밝혀진 것은 없었다. 그래서 만들어낸 것이 ‘레이더 사건’이었다. 구상과 친한 A가 있었다. 그의 사위는 도쿄대학에서 연구 중이었다. 실험에 쓸 진공관이 필요했다. 사위는 장인(A)에게 진공관을 부탁했다. A는 남대문시장에서 진공관을 구해 일본으로 보내주었다. 사위는 진공관이 더 필요하다고 연락했다. A는 시장 상인에게 선금을 주고 진공관을 부탁했다. 그런데 돈을 떼이고 말았다. 구상은 A로부터 딱한 사정을 듣고 잘 아는 사람에게 돈을 받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이 일이 적을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로 둔갑했다.

관련된 사람 모두 한국군 통신장비인 레이더 진공관을 일본을 통해 북한으로 몰래 보내려 했다는 죄목으로 구속되었다. 구상은 1심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15년 형을 선고받았다. 감옥에서 여섯 달을 살았다. 억울함을 재판장에게 호소했다.

“내가 만일 조국을 팔았다면 또 그 손에 놀아났다면 재판장님! 징역이 아니라 사형을 내려 주십시오. 조국을 모반한 치욕을 쓰고 15년이 아니라 단 하루라도 목숨을 구차히 이어 가느니보다 죽음이 차라리 편안합니다.… 재판장님! 무죄가 아니면 진정, 사형을 내려 주십시오.”

재판장은 구상의 억울한 호소에 귀를 기울여 2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시인의 임종 고백

폐결핵을 앓던 둘째 아들이 세상을 떠났다. 그때, 구상은 자신의 병이 아들에게 옮아 죽은 것이라고 자책했다. 그 후로 아내를 잃고, 큰아들도 폐렴으로 잃었다. 또한, 큰 교통사고를 두 번씩이나 당했다. 그 후유증으로 육체적 고통을 많이 받았다. 고질병인 천식이 호흡곤란으로 이어졌으며, 당뇨와 눈의 망막염 그리고 전립선 질환까지 그를 괴롭혔다. 특히 당뇨가 심했는데 인슐린 주사를 맞을 정도였다. 결국 구상은 합병증으로 여의도성모병원 중환자실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장례 미사는 명동대성당에서 김수환 추기경 주례로 거행되었다. 미사에는 시인, 소설가, 화가, 기자, 신부, 수녀, 수사, 스님, 장애인, 전과자 등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구상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시인 고은의 말대로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의 친구가 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었다.

구상은 ‘임종 고백’이란 시를 남겼다.

“나는 한평생, 내가 나를 / 속이며 살아왔다 / 이는 내가 나를 마주하는 게 / 무엇보다도 두려워서였다.… 더구나 평생 시 쓴답시고 / 기어(綺語) 조작에만 몰두했으니 / 아주 죄를 일삼고 살아왔달까! / 그러나 이제 머지않아 나는 / 저승의 관문, 신령한 거울 앞에서 / 저런 추악 망측한 나의 참모습과 / 마주해야 하니 이 일을 어쩌랴! / 하느님, 맙소사!”



참고자료 : ▲구상, 「영원 속의 오늘」, 중앙출판공사, 1975. ▲구상, 「그분이 홀로서 가듯(具常詩文選)」, 홍성사, 1981. ▲구상, 「나는 혼자서 알아낸다」(한국대표명시선100), 시인생각, 2013. ▲이숭원, 「구상평전」, 분도출판사, 2019. ▲구상문학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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