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도 왜관수도원 후원회에 드리는 감사편지
찬미 예수님!
한번 만나 뵌 적도 없는 베네딕도회왜관수도원 후원회원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자 이렇게 편지를 드립니다. 저는 안동교구 점촌본당에 다니고 있는 이향바실리사라고 합니다. 현재 성당에서 맡은 소임은 성가대와 선교부 차장 활동입니다. 점촌성당 차광철베다 신부님으로부터 베네딕도회왜관수도원 후원회원님들께서 우리 본당을 위해 감실을 기증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습니다. 워낙 큰 비용이 소요되어 늘 걱정을 하시던 신부님을 봐왔기에 놀랍기도 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무척 컸는데 제 마음을 아셨는지 신부님께서 특별히 제게 감사의 편지를 써줄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감사의 마음을 전할 방법이 딱히 없어 제가 알고 있는 우리 점촌본당을 소개드려볼까 합니다.
우리 점촌본당은 본당의 역사만 100년을 바라보는 오래된 성당이랍니다. 1877년에 시작된 표석골 공소 시절을 더한다면 훨씬 더 오랜 역사를 자랑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점촌성당은 세 번의 이전을 하였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오늘날의 공평동의 전신인 표석골에 조그마하게 지어진 공평성당으로, 그 당시 교우들이 직접 삽질을 해가면서 성당을 지었다고 합니다. 이후에 점촌읍이 성장하면서 본당을 점촌읍으로 이전할 필요성이 제기되어 현재 문경산재병원자리에 두 번째 성당을 지었다고 하는데 이 때가 1949년 11월이었습니다. 이 때도 교우분들이 공평성당의 흙벽돌과 창문 틀 등 건축 자재를 옮겨와서 직접 지으셨다고 합니다.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난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성당 건물의 지붕과 바닥이 파손되고 유리창이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이 훼손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1956년에 점촌성당에 부임하신 아놀드 렌하르트(한국이름: 노도주)신부님께서 새 성당 부지를 매입하고 현재의 성당을 건립하셨습니다. 이 때 대부분의 비용을 노도주 신부님께서 조국인 독일의 지인분들에게 하루가 멀다하고 편지를 쓰셔서 받은 후원금이었다고 합니다. 건축물 내부가 전부 붉은 벽돌을 켜켜이 쌓고 겉을 다시 시멘트로 마감하여 지었다고 하며 벽의 두께가 40cm에 달한다고 하니 얼마나 공을 들였고 비용이 많이 들어갔을지 가히 짐작이 갑니다. 또한 베네딕도 수도원 소속 신부님들과 수사님들이 직접 설계와 건축에 함께 하셨다고 하니 노도주 신부님 이하 베네딕도수도원 수사님들의 희생에 그저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이후에 상지유치원을 건립하여 교육사업을 통한 선교사업을 실천하고 있는데 저는 유치원을 다녀보지 못한 세대입니다만, 제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1971년에 상지유치원이 건립되어 우리 지역의 내노라하는 집안의 귀한 자제들이 다니던 유치원이라 어린 마음에 상당히 동경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후에도 상지유치원은 명문유치원으로 이름을 날려서 한 때는 상지유치원에 입원시키고 싶은 학부모들이 추운 날씨에 아랑곳하지 않고 접수 전날 밤을 세워가며 성당 앞마당에 긴 줄을 섰다는 건 점촌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전설같은 이야기입니다.
2009년에는 정일가브리엘신부님께서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성당, 이웃과 나누고 어르신을 공경하는 성당을 위해 ‘나섬(나눔과 섬김)의 집’을 건립하셨습니다. 요즈음은 코로나로 인해 무료급식을 하는 대신 매주 화요일에 일주일분 부식을 제공하고 있지만 운영이 되는 시기에는 매주 화요일~목요일에 하루 150여명의 어르신들께 점심식사를 제공해 드리면서 나섬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우리 점촌본당이 지역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오는 동안에 드디어 100주년을 1년 남겨두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에 사실은 그토록 열심히 기도하시고 하느님 말씀을 실천하며 사셨던 선배교우 분들은 하느님 나라에 가신 분도 계시고 연로하셔서 성당 미사에 참례하는 것 조차도 힘겨워하시는 분들이 많아지셨습니다. 그와 더불어 우리 성당 건물도 그토록 튼튼하게 지어졌지만 세월의 무게에는 어쩔 수 없는지 여기저기 고장이 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100주년을 앞두고 우리 본당에 부임하신 차베다 신부님께서 참 많은 노력을 해오셨습니다. 차베다 신부님을 2년여 옆에서 지켜본 바, 저는 신부님의 캐릭터를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하였습니다. 첫째, 유머러스하신 신부님, 둘째, 추진력 갑이신 신부님, 셋째, 낭만적이신 신부님이십니다. 신부님의 강론은 언제나 명쾌하면서도 재미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주일만큼은 꼭 큰 소리로 웃게 됩니다. 또 점촌성당 100주년을 3년 정도 남겨놓은 시점에 우리 본당에 오셔서 얼마나 어깨가 무거우셨을까마는 하나하나 하시고자 하는 일들을 실행에 옮기시는 추진력이 정말 대단하셨습니다. 그 중에서도 스테인드 글라스 설치는 정말 압권이었습니다! 제가 친구따라 점촌성당에 처음 와본 것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는데 제 기억 속의 성당은 컴컴하고 어딘가에서 귀신이라도 나타날 것 같은 무서운 곳이었습니다. 30대 중반에 입교하여 모전성당에서 점촌성당으로 옮겨 왔을 때는 어린 시절 느낌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어두운 곳이라는 느낌이 강했더랬습니다. 20여년 성당을 오면서 늘 성당 창문이 거슬리고 다른 성당처럼 화사한 성당에 다니고 싶다는 열망이 제 맘 속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드디어 스테인드글라스를 설치했습니다. 지금의 우리성당이요? 스테인드글라스에서 퍼져나오는 형형색색의 빛으로 더는 어두운 곳이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밝고 화사한 성당으로 대변신을 했지요. 아울러 성모동산을 새로 꾸미셨는데 비바람을 막아줄 동굴도 만들어 드리고 성모님의 양옆으로 귀여운 아기천사님들도 함께 계셔서 더는 성모님이 춥고 외롭지 않으실 것 같아요. 성당 내외부 도색도 했는데 특히 외벽의 색깔은 하늘 색을 띠는 회색을 사용했는데 신부님께서는
“성당을 위로 올려다 봤을 때 하늘과 맞닿아서 어디가 하늘인지 어디까지가 성당인지 모르는 오묘한 느낌을 가졌으면 합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신부님 참 낭만적이시지 않나요? ^*^
원래 우리 성당의 감실은 베네딕도수도회 후원회에서 보내주신 것과 비슷한 금색으로 되어 있었고 벽 내부에 설치된 것이었는데 십여년 전 성당 옆에 붙어 있던 소성당을 제거하면서 벽에 금이 갔고 벌어진 틈으로 물이 스며들어와 감실을 못쓰게 되었습니다. 하여 새로운 감실을 준비하려고 계획하였는데 비용이 많이 들어 성당 교우들 중에 기부자를 찾던 중에 베네딕도수도회 후원회에서 기부를 하신다는 놀라운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점촌성당 건립 때부터 언제나 함께 해온 성베네딕도회왜관수도원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 뭔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백주년을 향하여 한걸음한걸음 나아가는 우리 점촌본당이 오랜 역사만큼이나 굳건한 믿음을 바탕으로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 보답하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하느님 나라라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을 천상 낙원 못지 않게 잘 살아 내는 것이 가톨릭 신자로서의 모습이 아닐런지요. 저는 언젠가 그림으로 본 장면인 긴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서 ‘내’가 아닌 맞은 편에 앉아있는‘상대방’의 입에 음식을 넣어주는 모습이야말로 낙원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더운 날씨가 연일 이어지고 있고 코로나19의 4차 대유행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불쾌지수가 많이 올라가는 요즈음이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솔로몬 왕의 말처럼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희미해질 날이 오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모두가 오늘도 꿋꿋하게 살아내기를 바라봅니다.
후원회원님들께 하느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고 영육의 건강과 행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드리면서 이만 감사의 인사를 마무리하겠습니다.
2021.8.2. 무더운 날에
점촌성당 이향 바실리사 드림